영화

[렛 미 인] 호구가 되어 버린 소년

iambob 2023. 6. 19. 17:23

제목 : 렛 미 인 (2010)

감독 : 맷 리브스

출연 : 코디 스밋 맥피(오웬 역), 클로이 모레츠(애비 역)



내 멋대로 쓴 <렛 미 인> 리뷰

뱀파이어가 실제로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사람 피를 마시고 다닐 테니, 살인죄로 지명 수배 중이려나. 사람 피 대신 동물 피를 마셔 보겠다고 가축우리를 드나들다 재물손괴죄로 경찰에 잡혀갔으려나. 요즘 같은 세상엔 아무리 뱀파이어라 해도 활개치고 다니기 어려울 거 같다. 거리 곳곳엔 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뱀파이어의 범죄 행각이 금방 탄로 나고 말 것이다. 또 십자가와 마늘로 뱀파이어를 물리치던 시절과 달리 위력적인 무기가 많아서 뱀파이어에게 속수무책 당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눈만 돌리면 교회가 있어서 나름 방어망이 잘 구축된 거 같기도 하고…

뱀파이어는 사람 목에 송곳니를 꽂아 구멍을 낸 뒤 피를 빨아먹는다. 시체를 부검하면 뱀파이어의 살인 수법을 명확하게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뱀파이어는 햇빛을 쐬면 피부가 타들어 가므로 밤에만 활동한다. 뱀파이어는 밤에 돌아다니며 동일한 수법으로 살인을 저지를 테니 수사 기관이 뱀파이어의 범죄 패턴을 분석하기도 용이할 것이다. 꼬리가 길면 잡히게 되어 있다. 살인 행각이 지속되면 증거가 남기 마련이고 결국 수사 기관은 뱀파이어를 범인으로 특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조력자가 있다면 어떨까. 조력자가 있으면 뱀파이어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렛 미 인>의 ‘애비’는 뱀파이어 소녀이다. 애비는 직접 인간 사냥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조력자의 도움을 받는다. 조력자는 애비를 굶기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애비가 사고를 치면 뒤처리를 하기도 한다. 애비는 나이가 어린 데다 든든한 조력자가 있어서 경찰의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 있다. 그런데 애비의 조력자는 나이가 너무 많다. 예전과 달리 힘에 부치는지 살인을 저지를 때 실수가 잦다. 무엇보다 그는 자기 행동에 회의를 느낀다. 애비로서는 위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영양 공급원에 빨간불이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오웬’은 어디 하나 마음 붙일 곳이 없는 소년이다. 엄마와 아빠는 이혼 소송 중이고 학교에는 오웬을 괴롭히는 무서운 아이들이 있다. 오웬은 울분을 차곡차곡 쌓으며 외로운 늑대가 되어 가는 중이다. 어느 날, 오웬은 동네 놀이터에서 애비를 만난다. 외톨이 오웬은 남루한 행색의 애비를 보고 동병상련을 느꼈는지 조금씩 애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애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오웬을 죽이지 않는다. 한 끼 식사용으로는 피가 부족해 보였을까. 아니면 아이는 죽이지 않는다는 불문율 같은 게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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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야 어찌 됐든 오웬과 애비는 친구가 된다. 그런데 애비가 오웬에게 마음을 여는 시점이 공교롭다. 조력자가 하는 일이 영 신통찮다 생각될 무렵 애비와 오웬은 친구가 된다. 애비는 본능적으로 오웬이 새로운 조력자가 될 거라 직감한 듯하다. 뱀파이어와 조력자 사이에는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야 할 터. 애비는 자신의 정체를 암시하는 듯한 말로 오웬의 마음을 떠본다. 애비가 뱀파이어인 건 까맣게 모른 채 사랑의 감정을 싹 틔우고 있던 오웬은 애비가 자기에게 거리를 두려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 싶어 못내 서운하다.

어쨌든 애비는 오웬의 고백을 받아들인다. 애비를 향한 마음을 피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오웬은 애비 앞에서 칼로 자기 엄지손가락을 긋는다. 그리고 뜻밖의 장면을 마주한다. 오웬의 피를 본 애비가 뱀파이어로 변하고 만 것. 여자 친구의 흉측한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한 오웬은 혼란에 빠진다. 뜻밖의 사실도 알게 된다. 애비와 함께 사는 아저씨가 애비의 아빠가 아니라는 걸. 오웬은 애비의 집에서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발견하는데, 사진 속에는 아저씨로 보이는 소년과 애비가 나란히 서 있었다. 아저씨는 언제부터 애비의 조력자로 살았던 걸까. 오웬은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그렇다고 애비의 존재를 부정할 수도 없다. 애비는 오웬에게 친구 이상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살인 행각을 이어가던 조력자에게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살인은 미수에 그쳤고, 이 일로 자신뿐만 아니라 애비까지 위험에 처한다. 존재 자체가 강력한 증거인 조력자는 자기 몸에 위해를 가함으로써 증거를 인멸하려 한다. 조력자는 순수한 목적에서 애비를 도왔지만, 결과적으로 연쇄 살인마가 되고 말았다. 애비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면서도 조력자는 소녀에게 미안해한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맹목적이고 순종적으로 만들었을까. 마을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사건들로 인해 경찰은 애비 가족을 의심한다. 더 이상 마을에 머무를 수 없게 된 애비는 마을을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마을을 떠나기 전 오웬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한다.

같은 반 아이의 도를 넘은 괴롭힘은 오웬의 생명을 위협한다. 그런 오웬을 대신해 애비는 잔혹한 복수를 감행한다. 그동안 오웬은 지속해서 괴롭힘을 당했지만, 누구도 오웬을 도와주지 않았다.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했던 행동은 오히려 그를 학폭 가해자로 만들어 버린다. 가혹한 현실은 점점 오웬을 고립시켰을 것이다. 혼자라는 생각이 오웬을 절망케 하는 순간, 애비가 짠! 하고 나타났고 나쁜 아이들을 응징하기 시작한다. 오웬 입장에서는 애비에게 충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자석에 끌리듯 두 사람은 서로의 필요성을 알아보았다. 그렇게 오웬은 자발적 호구가 되었고 애비는 뱀파이어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새로운 조력자를 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