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죄 많은 소녀] 모두가 죄인

iambob 2023. 8. 14. 12:13

제목 : 죄 많은 소녀 (2017)
감독 : 김의석
출연 : 전여빈(영희 역), 서영화(죽은 소녀의 엄마 역), 고원희(한솔 역)



내 멋대로 쓴 <죄 많은 소녀> 리뷰


한 소녀가 실종됐다. 소녀의 집과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소녀는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소녀에게서 아무런 낌새가 없었기에 소녀의 엄마는 애가 탄다. 학교는 일이 커지는 걸 극도로 경계한다. 학교는 소녀가 평소 우울한 음악을 즐겨 듣던 걸 구실 삼아 소녀의 실종이 학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명확히 해두려 한다. 경찰은 자살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이어간다. 소녀가 실종되던 날 ‘영희’와 함께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된 경찰은 영희를 추궁한다.

그날 영희는 소녀와 함께 있었다. 둘은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였으므로 그런 주제를 입 밖에 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소녀와 헤어진 후 소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희는 알지 못했다. 소녀는 억울했다. 자신은 소녀의 실종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간다. 학교에서 영희는 소녀를 죽인 나쁜 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죽은 소녀와 평소에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지 알 수 없지만, 몇몇 의협심에 불타는 아이들은 영희를 해코지한다.

지지부진한 수사가 이어지던 어느 날 마침내 소녀의 시체가 발견된다. 소녀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영희는 결백을 밝힐 기회를 잃고 만다. 가만히 있다간 영희가 소녀를 자살로 내몬 장본인으로 영원히 기억될 판이다. 영희는 소녀의 장례식장에 찾아가 경찰과 담임 선생님께 다시 한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그러나 영희에게 돌아온 건 냉대와 멸시뿐이었다. 소녀는 장례식장 화장실에서 표백제를 들이켜 자살 기도를 한다. 그렇다면 소녀의 죽음은 전적으로 영희 탓이었을까.

학교, 소녀의 가족, 친구들은 소녀의 죽음에 일정 부분 부채를 지고 있다. 하지만 사고가 터지자, 그들은 영희를 방패막이 삼아 그 일은 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양 뒤로 쑥 빠진다. 소녀의 엄마는 자신의 책임을 영희에게 전가한다. 그래야 자기 속이 편하다는 듯. 그녀는 딸의 사망 보험금으로 영희의 병원비를 댄다. 그리고 그걸 핑계 삼아 집요하게 영희 곁을 맴돈다. 그녀를 볼 때면 영희는 죽은 소녀를 떠올리며 죄책감에 시달릴 터. 그녀는 영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죄책감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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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희는 독박을 쓸 생각이 없다. 영희는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소녀의 엄마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려고 한다. 영희는 소녀의 엄마 앞에서 자살 계획을 밝힌다. 만약 영희가 죽는다면 사람들은 영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소녀의 엄마를 추궁할 게 뻔하다. 영희와 똑같은 상황에 빠지게 된 소녀의 엄마는 치를 떤다. 그리고 영희가 그랬던 거처럼 그녀도 영희와 같은 선택을 한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 영희에게 했던 행동은 오히려 더 큰 부채가 되어 그녀에게 돌아오고 말았다.

학교는 책임 회피로 일관한다. 관료주의의 타성에 젖어 있는 학교는 소녀가 죽은 원인을 교장 입맛에 맞게 재단한다. 그리고 소녀의 죽음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환하면서 그저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다룬다. 소녀의 자살로 같은 반 친구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담임은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기보다 교장 눈치를 살핀다. 영희가 자살을 시도한 건 아무도 영희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의 방관은 영희를 궁지로 내몰았다. 회피와 방관은 학교의 신뢰성을 스스로 깎아 먹는다. 두 번의 비극적 사건으로부터 학교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몇몇 아이들은 군중 심리에 기대어 영희를 맹목적으로 비난한다. 그들은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제멋대로 영희를 단죄한다. 그런데 과연 그들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을까. 득달같이 달려가 영희를 해코지할 땐 언제고 막상 책임질 일이 생기자, 그들은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다. 익명성에 숨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고 번지수가 틀린 비난의 화살을 여기저기 쏘아대는 그들에게 죄의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군중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그들은 군중의 눈을 의식해 영희에게 억지 사과를 한다.

모두 소녀의 죽음과 무관하다 말하지만 그들의 바람과 달리 그들은 직간접적으로 소녀의 죽음에 관여했다. 그날 영희는 소녀를 말릴 수 있었다. ‘한솔’은 질투에 눈이 멀어 소녀의 자살을 부추겼다. 소녀의 엄마는 딸에게 무신경했다. 학교는 학생을 보호해야 하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소녀를 저주하고 다닌 아이는 저주가 현실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대신해 죄를 뒤집어써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때마침 영희가 있었다. 그러나 영희는 호락호락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다. 죽다 살아난 영희는 가장 멋진 죽음을 완성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간다. 그리고 계획했던 바를 하나씩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