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감독 : 존 왓츠
출연 : 톰 홀랜드(피터 파커 역), 젠데이아 콜먼(MJ 역), 베네딕트 컴버배치(닥터 스트레인지 역)
쿠키 영상 : 2개
스파이더맨을 보고 든 생각(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그동안 스파이더맨은 스파이더맨 1, 2, 3,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스파이더맨 홈 커밍,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등 총 8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한 배우가 모든 시리즈에 출연했으면 좋았겠지만, 토비 맥과이어, 앤드류 가필드, 톰 홀랜드로 주인공이 총 세 번 바뀌었다.
주인공이 바뀌었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톰 홀랜드 주연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제외하고 나머지 에피소드들은 독립된 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기 때문에 굳이 전편을 챙겨보지 않아도 다음 편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래서 중간에 주인공이 바뀌었어도 이질감 없이 각 에피소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스파이더맨 캐스팅 소식을 접할 때면, (정이 들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만, 아무튼) 정들었던 배우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아쉬운 마음보다 새로운 배우에 대한 기대가 훨씬 컸었다.
피터 파커를 연기한 배우가 바뀐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여자 친구를 연기한 배우도 바뀌었다. 그런데 스파이더맨의 이름이 항상 피터 파커로 변함이 없었던 것과 달리, 그의 여자 친구는 메리 제인, 그웬 스테이시, 미쉘 존스로 바뀌었다. 2002년, 첫 시리즈가 개봉한 뒤 벌써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인제야 이걸 깨닫다니. 아무튼 더욱더 명확해졌다. 세 명의 배우가 연기한 각각의 스파이더맨은 스파이더맨이라는 지붕 아래 따로 방을 쓰고 있는 다른 영화나 다름없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는 피터 파커와 닥터 스트레인지가 여차여차해서 다른 세상에 사는 피터 파커를 한 공간에 불러들인다. 처음에는 작별 인사 없이 스파이더맨에서 하차한 두 배우에 대한 헌사라고 생각했다. 관객들에게 이런 식으로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를 추억하게 만들다니. 마블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방식으로 두 배우와 작별을 고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블은 큰 그림이 있었나 보다. 피터 파커들은 여차여차 어쩌다 한 공간에 모인 게 아니었다. 그들은 저마다 멀티버스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피터 파커였다. 그런 논리라면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하는 스파이더맨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또는 파편화되어 흩어져 있던 각각의 마블 영화가 멀티버스라는 명목하에 합종연횡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이해관계가 없는 영화를 물리적으로 이어 붙이는 마블의 비상한 아이디어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이유야 어찌 됐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20년 동안 이어진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총정리하는 동시에 향후 마블 영화가 나가고자 하는 바를 관객에게 제시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본 뒤, 앞으로 마블에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기대를 하게 되었다.
나는 영화를 재밌게 관람했다. 근데 연신 하품을 하며 영화를 보던 누나는 중간에 잠이 올 뻔했단다. 나는 마블의 세계관을 꿸 정도의 팬은 아니다. 그래도 몇 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마블 영화를 챙겨 보았다. OTT 드라마처럼 한꺼번에 몰아서 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이르는 과정을 좇아가기가 버거웠던 적도 있다. 그래도 괜찮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인터넷을 찾아보면 되니까.
하지만 이마저도 귀찮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전 지식이 없어도 마블 영화를 재밌게 즐길 수 있었던 때가 있었던 거 같은데, 어느 순간 판이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미리 공부하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입장벽이 높으면 영화 보기가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마블 스튜디오가 우리 누나처럼 마블의 세계관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나처럼 마블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계속 기존 팬만 안고 가다간 자기네들끼리 웃고 떠드는 영화가 되고 말 테니까. 아니면 벌써 그렇게 됐을 지도.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목에 충실 한,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0) | 2022.02.23 |
---|---|
양립할 수 없는 힘의 충돌, <아라비아의 로렌스> (0) | 2022.02.14 |
[미드 90] 그러다 철이 든다 (0) | 2022.02.02 |
[소리도 없이] 자의적 해석에 대한 경계 (0) | 2022.01.20 |
[일 포스티노] 쉽게 쓸 수 없었던 시 (0) | 2022.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