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재스민] 덫에 걸린 자기합리화

제목 : 블루 재스민
감독 : 우디 앨런
출연 : 케이트 블란쳇(재스민 역), 샐리 호킨스(진저 역), 알렉 볼드윈(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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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재스민>과 별로 상관없는 리뷰

크든 작든 잘못을 저지르고 나면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내 머리는 과거를 복기한다. 그리고 오류를 하나씩 수정해 나간다. 거기서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과거를 되짚어 보는 이유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자기합리화를 하려고 과거를 복기하기도 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런 행동을 했다. 그 상황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내가 저지른 일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자책감이나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이 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걸 자기합리화라고 한다. 내 행동에서 비롯된 그릇된 결과의 책임을 오로지 혼자 감당하는 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우리는 자기합리화를 하는지도 모른다. 자기합리화를 할 경우, 내 행동에 과실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잘못이 드러나는 순간 상대에게 꼬투리를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내 행동에 허점이 없었다는 하나의 논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 기억은 재구성되기 시작한다. 내 잘못은 축소되고 나를 잘못에 이르게 한 원인은 부각된다. 그렇게 나에게 유리한 기억이 탄생한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분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누군가에게 내 억울한 기분을 알리고 싶다. 슬픔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도 나누면 반이 된다.

그때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내가 겪었던 억울함을 이야기하며 상대방의 동정을 구한다. 내 말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책감의 크기는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피해자가 되어 있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문제는 쌍방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 한쪽의 말만 들어서는 그 일의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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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재스민>의 ‘재스민’은 남편의 재력에 편승해 호의호식하는 인물이다. 재스민이 주류 세계에 편입하는 데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다. 재스민이 주류 세계에 발 디딜 수 있었던 건 동생 ‘진저’의 말마따나 그녀의 우월한 유전자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재스민은 그녀에게 주어진 부와 명예를, 자신 정도라면 응당히 누려야 할 권리쯤으로 생각한다. 재스민이 동생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녀가 얼마나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 수 있다.

재스민은 방관자이다. 그녀는 복잡한 일에 휘말리는 걸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남편 ‘할’이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버는 걸 알면서도 수수방관한다. 재스민은 선심 쓰듯 동생 부부에게 남편의 사업에 투자하라고 권하는데, 할은 그들의 투자금을 홀라당 해버린다. 그러나 재스민은 동생 부부에게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녀는 그들에게 선의를 베풀었을 뿐이고, 바깥일은 그녀의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사과할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의 상습적인 외도는 견딜 수 없는 수모였나 보다. 그녀의 뛰어난 유전자에 흠집이 가는 게 견딜 수 없었던 걸까. 재스민은 남편을 FBI에 고소한다.

재스민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남편을 고소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남편이 불법을 저질러서 교도소에 갔고 자신은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말한다. 할이 끝까지 떵떵거리며 살았을지, 언젠가는 교도소에 들어갈 팔자였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할을 교도소에 보내는 데 재스민이 일조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재스민은 자신도 피해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할의 범죄 행위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고 그가 사기를 쳐서 가져다준 돈으로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었으므로 남편의 일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걸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원래 이름인 재닛이 아닌 재스민으로 불리길 원한 걸 보면 재스민은 자신의 삶이 리셋 되기를 바랐던 거 같다. 운이 좋았던 건지, 유전자 덕분인지 어쨌든 재스민은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홧김에 저지른 일이 일파만파 커져 재스민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재스민은 그러한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망쳐버린 건 할이고 그녀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야 무거운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