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빌러비드
지은이 : 토니 모리슨
출판사 : 문학동네
내 멋대로 쓴 <빌러비드> 리뷰
보통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우리는 여러 선택지 중 더 나은 걸 고른다. 이리저리 재서 나에게 가장 이로운 결과를 가져다주는 걸 선택하는 것이다. 근데 살다 보면 선택지에 고를 만한 게 없는 경우가 있다. 뭘 선택하든 결과가 나빠질 게 뻔한데도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나쁜 것과 나쁜 것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그땐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닥쳤을 때 나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쁜 것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므로 더 나은 선택이란 없다. 아마 어떤 결정을 해도 후회가 남을 것이다.
<빌러비드>의 ‘세서’는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다. 세서는 목숨을 걸고 스위트홈에서 탈출했다. 그런데 124번지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일어난다. ‘학교 선생’ 일당이 124번지까지 쫓아온 것이다. 세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자식들이 백인에게 끌려가 노예로 비참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던지, 그 꼴을 보느니 애초에 싹을 잘라 놓던지. 그녀는 후자를 택한다. 그녀는 네 명의 자식 중 이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한 딸부터 죽인다.
흑인이 노예로 거래되던 시절, 흑인의 인권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백인은 흑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백인은 흑인을 동물처럼 대했다. 세서의 시어머니 ‘베이비 석스’ 같은 경우, 아비를 알 수 없는 자식 여럿을 낳아야 했고, 낳은 자식을 품어보지도 못한 채 백인들에게 죄다 빼앗겨야 했다. 흑인들은 제대로 된 이름도 갖지 못했다. 베이비 석스에겐 ‘제니 휘틀로’란 이름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제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 이름은 매매 증서를 쓸 때나 이용될 뿐이었다. 폴 형제들도 마찬가지다. 마치 순번이라도 매기듯 그들의 이름엔 A, B, C, D가 붙었다.
미래를 꿈꿀 수 없는 환경은 절망적이다. 세서는 노예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잘 알기에, 백인들이 아이들을 끌고 가 자식들의 삶을 짓밟는 꼴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극단적인 결단을 내린다. 아마도 그녀에게 시간이 허락됐다면 더 많은 아이가 죽었을 것이다. 아이를 위해서 한 일이라 하더라도 세서의 행동은 윤리적으로 손가락질받을 수밖에 없다. 아이의 미래가 암울할지언정 부모에게는 아이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건 사랑으로 포장할 수 없는 비윤리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날의 일은 가족 모두에게 트라우마로 남고 말았다. 세서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고 남은 아이들은 다음 희생양이 자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게 되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124번지는 은혜로움이 충만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일어나고 난 후 그곳은 원한이 서린 곳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124번지를 찾지 않았고 세서는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124번지에서는 죄책감, 두려움, 사랑에 대한 갈구가 뒤섞인다. 다양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하자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죽었던 아이가 ‘빌러비드’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세서, 빌러비드, 세서의 딸 ‘덴버’는 세상과 담을 쌓고 기묘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세서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빌러비드를 정성껏 시중든다. 그녀는 빌러비드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정성을 쏟느라 점점 기력을 잃어 간다. 반면 빌러비드는 그녀의 생명을 갉아먹고 빼앗아 점점 더 부풀어 오르고 점점 더 키가 커졌다. (408쪽) 덴버는 빌러비드를 보호하기 위해 세서를 감시한다. 그날의 비극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 빌러비드의 탐욕은 점점 커져 세서를 집어삼킨다.
세서의 사랑은 보상의 성격을 띤다. 세서가 아이를 죽인 건 미워서가 아니었다.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그녀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었다. 그런데 불현듯 빌러비드가 나타나면서 세서는 사랑을 입증할 기회를 얻는다. 그녀는 아이에게 주지 못 한 사랑을 빌러비드에게 쏟아부으며 죄책감을 덜어내려 한다. 그러나 그녀의 노력과 죄의식이 반비례하는 거 같진 않다.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죽어 버린 시간에 생명을 불어넣어 봤자 어차피 그건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빌러비드는 세서의 사랑을 자양분 삼아 몸짓을 불려 가지만 욕구가 결코 충족되는 법이 없다.
과거에 발목 잡힌 그들의 관계는 파멸을 향해 간다. 과거에 함몰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갈는지도 모른다.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덴버는 엄마가 빌러비드를 해칠 거로 생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사랑에 굶주린 빌러비드가 엄마를 해친다. 세서는 모든 백인을 잠재적인 위협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그건 세서의 착각에 불과했다. 세상의 모든 백인이 흑인을 혐오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나는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변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인종 차별 문제가 쉽게 해결되진 않겠지만 내일은 어제보다 조금은 괜찮아져 있을 거라고. 폴 디는 세서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과 나, 우리에겐 어느 누구보다 많은 어제가 있어. 이젠 무엇이 됐든 내일이 필요해. (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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