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빅 피쉬 (2004)
감독 : 팀 버튼
출연 : 이완 맥그리거(젊은 에드워드 블룸) 역, 알버트 피니(에드워드 블룸 역)
내 멋대로 쓴 <빅 피쉬> 리뷰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소설에서 아버지는 딸에게 의문부호 같은 사람이었다. 딸은 아버지의 생각, 행동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딸이 아버지를 이해할 기회도 영영 사라져 버리는 듯했다. 그런데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들이 아버지에 대해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면서 딸의 생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기억 속 아버지는 딸이 생각해 왔던 아버지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그간의 오해를 깨끗이 씻는 계기가 되었다. 좀처럼 좁혀질 거 같지 않던 아버지와 딸의 마음의 거리는 아버지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가까워진다.
영화 <빅 피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에드워드 블룸’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동화처럼 이야기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의 아들 ‘윌’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한때는 아버지의 이야기에 가슴 설레었던 적도 있었지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아버지의 이야기가 점점 허무맹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했다. 아버지의 허황된 이야기는 윌이 성인이 된 뒤에도 그칠 줄 몰랐고, 결국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윌이 아버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려고 할 때마다 에드워드는 왕년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윌의 눈에는 그런 에드워드의 태도가 진지한 상황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에드워드와 윌의 갈등은 에드워드가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가까스로 봉합된다. 윌은 우연히 아버지 집 창고에서 아버지의 진실을 밝혀줄 단서를 발견한다. 윌은 그 단서를 토대로 아버지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간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가 지어낸 것이 아닌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한 윌은 그제야 제 생각이 오해였음을 깨닫는다.
에드워드와 윌은 이야기에 대한 접근 방식이 서로 달랐다. 마치 글의 종류에 따라 글을 읽는 목적이 달라지는 것처럼. 재미와 감동을 목적으로 하는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허용된다. 장르 소설 중 하나인 무협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장풍 같은 걸 쏘아댄다고 해서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는 전제하에 무협 소설을 읽기 때문에 내용이 다소 황당무계하더라도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신문 기사는 다르다.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신문 기사는 정확성이 생명이므로 과장된 표현은 금물이다.
윌은 아버지의 과거를 사실 그대로 알기를 원했다. 아버지는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이야기가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윌이 느끼기에 아버지의 이야기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반면 에드워드는 이야기를 재미있고 흥미롭게 윤색하는 것을 좋아했다. 설령 그 이야기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더라도 말이다. 이야기에 대한 접근 방식이 서로 달랐던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건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따질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사실만 전달하지 않는다. 경험했던 일을 돋보이게 만들려고 과장을 보태기도 하고, 있지 않은 일을 사실처럼 재미있게 꾸미기도 한다. 사실만 이야기한다면 우리의 대화는 꽤 단조로울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과장, 허구적으로 지어낸 이야기 등이 우리의 대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도 한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사실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실은 때론 따분하고 밋밋하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은 종종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한다. 볼품없는 크기의 물고기가 어른 팔뚝만 한 물고기로 둔갑하는 것이다.
에드워드와 윌이 감정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렸던 것은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데서 비롯되었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자기 말만 옳다고 내세우면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질 뿐이다. 그러나 다름을 인정하면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윌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아버지의 생각이 자신과 달랐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자 마침내 아버지에 대한 오해가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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