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블리비언] 새로운 기술과 공존하기

iambob 2024. 4. 16. 13:19

제목 : 오블리비언 (2013)

감독 : 조셉 코신스키

출연 : 톰 크루즈(잭 하퍼 역), 올가 쿠릴렌코(줄리아 역), 안드레아 라이즈보로(빅토리아 역)



<오블리비언> 리뷰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우려와 기대가 섞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한쪽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안겨 줄 청사진을 그렸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기술 때문에 사라질 일자리에 대해 걱정했다. 산업 혁명은 인간을 기계로 대치하는 기술 혁명 운동이었다. 기계의 보급으로 싼값에 더 많은 양의 물건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는 전에 없던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산업 혁명을 반긴 건 아니었다. 기계 때문에 밥줄이 끊기게 생긴 사람들은 기계가 노동자의 일거리를 줄인다며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을 벌였다.

요즈음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를 자아내는 건 단연코 AI가 아닐까 싶다. AI가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고 글짓기가 가능하고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그림까지 그려주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AI는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던 부분이 획기적으로 개선됐고 인간의 고유 영역처럼 여겨져 온 창작 분야까지 정복한 것처럼 보였다. AI가 이 세상과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 놓을 거란 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몸소 경험해 보기도 전에 벌써부터 AI의 어두운 면이 부각되는 건 우려스럽다. 실제로 AI를 악용한 사례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AI 역시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새로운 기술은 나타나기만 하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걸까. 아마도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럴 것이다. 내 직업, 내 능력이 새로운 기술로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위기의식을 부채질하였다. 시장 논리로 접근하면 새로운 기술은 인간의 경쟁 상대가 될 수밖에 없다. 기술을 개발한 사람은 그 기술로 돈을 벌려고 할 것이고, 자신의 고유 영역을 침범당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기술과 경쟁해야만 한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새로운 기술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 기계는 이미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었고 앞으로 등장할 기술은 기술 혁신을 통해 고도로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새로운 기술과 경쟁할 수 있겠는가.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우려를 낳는 것은 이기지 못할 싸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영화 <오블리비언>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근저에 깔려 있다. 영화에는 사람의 통제를 받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한다. 영화에 나오는 인공지능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공지능은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하수인 노릇을 해줄 인간을 제외하고 살아 있는 거라곤 모조리 제거하려 든다. 또 인공지능의 동력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구의 자원을 무차별적으로 약탈한다. 게다가 인공지능은 자기 입맛에 맞는 인간만 지구상에 남겨 두기 위해 기억을 삭제해 버린 인간을 대량 복제하기까지 한다.

 

300x250


영화가 지구의 앞날을 이토록 암울하게 그린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과학 기술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몰고 온 경우를 많이 봐 왔다. 당장 AI만 하더라도 인류의 미래를 바꿔 놓을 대단한 기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벌써부터 가짜 뉴스나 보이스 피싱 따위에 악용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질 않나.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도 올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하다. 기후 위기, 대량 파괴 무기의 개발, 인간을 기계 부품 정도로 생각하는 사회 풍조는 과학 기술을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디스토피아적 영화는 대체로 인류를 위험에 빠트린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평화를 맞이한다. <오블리비언>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해 내기 위해 인공지능을 파괴한다. 이러한 영화를 교훈 삼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둬서 나쁠 건 없다. 넋 놓고 당하는 것보다 알고 당하는 게 그나마 정신 건강에 이로울 테니까. 게다가 만에 하나 영화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만일의 사태를 염두에 두는 편이 그나마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기술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비록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예전부터 그래왔듯 새로운 기술을 누군가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만 이용한다면 언제든 기계 파괴 운동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봤을 때 기술 발전을 인위적으로 막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새로운 기술이 빼앗아 갈지도 모를 밥그릇 걱정만 했지 새로운 기술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다. 새로운 기술과 맞서 싸울 생각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새로운 기술과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