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당신의 부탁
감독 : 이동은
출연 : 임수정(효진 역), 윤찬영(종욱 역)

<당신의 부탁>을 본 뒤 든 이런저런 생각
주미(서신애)는 어린 나이에 임신한다. 한국에서 미혼모가, 그것도 미성년자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미는 자신의 아이를 불임 부부에게 입양 보내기로 한다.
주미는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사회가 요구하는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모성애만으로 아기를 책임지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우리 사회는 십 대 미혼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주변의 도움이 없다면 주미와 아이가 위험한 환경에 노출될지도 모른다. 그건 주미와 아이 둘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주미는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형편이 좋은 부모에게 아기를 입양 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겠지만, 현실을 직시했을 때, 주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종욱은 엄마의 품을 그리워한다. 종욱을 낳아준 엄마는 종욱이 갓난아이였을 때 죽었다. 종욱이 친엄마라고 생각했던 여자는 신병을 앓으면서 종욱 곁을 떠났다. 아빠가 효진과 재혼한 뒤 종욱은 외할머니와 살았다.
심리학자 해리 할로는 푹신한 쿠션에 부드러운 수건을 두른 엄마 원숭이와 가슴 높이에 우유병을 매단, 철사로 만든 엄마 원숭이를 준비했다. 그리고 새끼 원숭이가 어느 엄마에게 다가가는지 지켜보았다. 새끼 원숭이는 배가 고플 때만 철사 엄마에게 다가갔고 대부분의 시간은 천으로 만든 엄마에게 매달려 지냈다. 이 실험을 통해 우리는 아이가 엄마로부터 먹이 이상의 정서적 유대를 원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종욱은 엄마를 가져보지 못했다. 종욱은 자기 뿌리가 궁금해서라기보다 엄마의 부재에서 비롯된 정서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 엄마를 찾아다닌다. 종욱이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앞으로 태어날 주미의 아이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종욱의 외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종욱을 돌봐주기 힘들어지자, 죽은 남편의 동생은 효진을 찾아와 종욱을 맡아 달라고 부탁한다. 막말로 남편도 죽은 마당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종욱을 거둘 이유가 없지만, 여차여차 어쩌다 보니 효진은 종욱과 함께 살기로 마음먹는다.
엄마라고 하면 헌신적인 사랑, 모성애가 떠오른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중3 남자아이의 엄마가 된 효진에게 헌신적 사랑, 모성애가 생길 리 만무하다. 비록 종욱에게 친엄마와 같은 사랑을 나누어줄 수 없지만, 효진은 종욱이 엄마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거나, 종욱의 꿈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고, 종욱이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기보다 그 기억을 보듬는 엄마가 있다면 종욱의 상처도 어느 정도 치유되지 않을까 싶었다.
효진의 엄마 명자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전형적인 엄마이다. 명자는 자기 자신보다 자식이 더 중요하고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자식 잘난 맛에 사는 엄마를 보면 가끔 숨이 막힐 때가 있다. 나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식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본인의 행복과 자식의 행복을 동일시하는데, 그런 엄마의 생각이 집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본인의 삶과 자식의 삶을 분리하지 않으면 훗날 엄마의 인생은 빈껍데기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는 건 자식들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효진이 종욱의 엄마가 되려고 하자, 명자는 당연히 반대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딸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품 안의 자식은 언젠가 떠난다는 걸 인정하게 된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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