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클라라가 던지는 질문들.

iambob 2022. 8. 30. 12:34

제목 : 클라라와 태양
지은이 : 가즈오 이시구로
출판사 : 민음사



내 멋대로 쓴 <클라라와 태양> 리뷰

언제부턴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먼 산이 유난히 흐릿해 보이는 날이 있다. 그런 날 일기 예보를 보면 아니나 다를까 공기 질이 나쁘다. 나는 혹여 먼지가 들어올까 봐 창문을 꼭꼭 닫아건다. 미세먼지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했을 때는 마스크도 쓰지 않고 용감하게 외출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미세먼지가 워낙 몸에 해롭다고 하니 가급적 마스크를 쓰려고 노력한다. 뭐 지금은 공기가 깨끗하다 해도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클라라와 태양> 속 ‘쿠팅스 머신’은 공해를 쏟아내는 기계이다. 쿠팅스 머신은 햇빛을 가릴 정도로 심한 연기를 뿜어낸다. 그로 인해 창밖은 낮인데도 한밤처럼 캄캄하다. 주어진 정보가 부족해서 쿠팅스 머신이 어떤 기계이고 ‘조시’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미세먼지가 사람 몸에 해를 끼치는 것처럼 기계가 내뿜는 연기 역시 사람 몸에 좋을 리 만무하다. 인간의 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공해는 지구뿐만 아니라 인간도 병들게 한다. 이해관계의 충돌로 인간은 지구가 보내는 위험 신호를 애써 외면한다. 인간이 가하는 위해를 지구는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조시는 향상된 아이다.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능력이 향상되는지 역시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향상되려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듯하다. 조시의 언니 같은 경우 뜻하지 않게 목숨을 잃었다. 위험을 감수한 대가는 달콤하다. 향상된 아이들은 엘리트 교육을 받게 되고 출세가 보장된다. 표면적으로 우리는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학벌이 일종의 계급처럼 작용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피라미드의 꼭대기 층에 있는 대학 출신들이 고위직에 다수 포진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게 대표적이다.

노력하면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은 상당 부분 희석되고 말았다. 부모의 재력이 자식의 성공 요건이 된 지 오래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으로 갈 수 있는 프리패스를 어린 나이부터 끊을 수 있다면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계급화할 것이다. 아마도 부를 축적한 사람만 자식을 향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 향상된 사람은 새로운 형태의 계층이 되어 그들의 지위를 자식에게 세습하려 할 테고 그렇게 만들어진 계급은 점점 굳어질 것이다. 그러잖아도 세상은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다. 만약 책에서처럼 사람이 인위적인 방법으로 향상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분열이 더욱 심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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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의 건강이 나빠진 게 향상되었기 때문인지 확실하진 않다. 조시의 건강은 날로 악화하여 간다. 조시의 엄마 ‘크리시’는 딸에게 에이에프를 사주는데,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조시에게 로봇 친구를 만들어 주는 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크리시는 만에 하나 딸이 죽을 경우 ‘클라라’가 조시를 대신해주길 바란다.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망자를 추억하려고 한다. 세상이 변했으니 AI 로봇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거 같다.

언젠가 가상 현실에서 죽은 가족을 만나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방송은 안타깝게 가족 곁을 떠난 고인을 3차원으로 구현해냈다. 그리고 사연자는 가상현실 속에서 고인을 만나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는 죽은 가족을 만날 수 없지만, 가상현실에서나마 고인을 추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클라라 같은 AI 로봇이 죽은 가족의 모습을 하고 곁에 머무른다면 어떨까. 망자가 살아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까. 그렇게 해서라도 소중한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껍데기에 불과한 AI 로봇을 진짜 가족처럼 대할 수 있을까. 고인의 생전 모습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로봇을 매일 바라봐야 하는 건 가상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다.

클라라의 노력 덕분인지 다행히 조시는 건강을 회복한다. 클라라의 생각대로 태양이 조시를 낫게 했는지 그것 또한 확실하지 않다. 평생 함께일 거 같던 조시와 클라라지만, 조시가 나이 들어가면서 둘의 사이도 점점 멀어져 간다. 조카는 인형을 좋아한다. 인형을 선물 받으면 잠도 같이 잘 정도로 애지중지한다. 하지만 그 기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인형 머리카락은 한데 엉키고 옷은 벗겨지고 몸 여기저기에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는다. 어찌 보면 조카의 즐거움을 위해 한 몸 불사르고 장렬히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게 인형의 숙명인 것만 같다.

감정을 이입해서 본다면 클라라의 마지막은 안타까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결국에는 버려지기 때문이다. AI 로봇이 아무리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해도 본질이 바뀌진 않는다. AI 로봇도 결국 조카의 인형처럼 효용 가치를 다하면 버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클라라는 불평이 없다. 한때는 너무나 소중했던 로봇이지만 더 이상 쓸모가 없어 처분해야 할 경우 우리는 윤리적 책임을 느껴야 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 조카는 쿨하게 인형을 보내주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