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길버트 그레이프] 길버트에게 가족은 짐일까?

iambob 2023. 1. 12. 16:39

제목 : 길버트 그레이프 (1993)

감독 : 라세 할스트롬

출연 : 조니 뎁(길버트 그레이프 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아니 그레이프 역)



내 멋대로 쓴 <길버트 그레이프> 리뷰

‘길버트 그레이프’는 깡촌에 산다. 지방의 일자리 부족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길버트가 사는 곳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그곳은 지역 주력산업이랄 게 없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 자릴 지킨 가게에서 경제 활동을 한다. 근데 얼마 안 남은 일자리마저 사라질 판이다. 길버트가 일하는 슈퍼마켓 근처에 대형마트가 생기는 바람에 슈퍼마켓에는 파리만 날린다. 그 마을은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은 오늘 같을 것이다. 마치 그곳만 시간이 정체된 거처럼. 프랜차이즈 햄버거집 개업이 마을의 큰 행사가 될 정도다. 길버트의 친구 ‘터커’는 햄버거 가게에 취직하길 바란다. 그리고 거기서 일하며 펼쳐질 장밋빛 미래를 그린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 마을은 꿈과 희망이 없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서울이 지방보다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길버트가, 나고 자란 마을에서 날고 기어 봤자 결론은 뻔하다. 아마도 지금의 상황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설마 슈퍼마켓이 사라지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슈퍼마켓마저 사라지면 앞으로 뭐로 벌어먹고살까 노심초사하며 살아가겠지. 일찌감치 마을을 떠난 길버트의 형이 옳은 선택을 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버트는 마을을 떠날 수 없다. 그에게는 보살펴야 할 가족이 있다. 그는 가족을 없는 셈 치고 살아갈 만큼 막돼먹지 못했다.

길버트의 엄마는 초고도비만이다. 처음부터 그녀가 뚱뚱했던 건 아니다. 그녀도 예뻤던 시절이 있었다. 남편이 자살하면서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말았다. 엄마는 큰 충격을 받았고 몸무게가 급격히 불어났다. 그녀는 자식을 돌보지 않는다. 소파 지박령이 되어 소파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저 말로만 자식을 걱정할 뿐이다. 그녀는 오히려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살이 쪘기 때문이다. 길버트의 엄마는 숙식을 소파에서 해결한다. 밥때가 되면 자식들이 상을 차려 소파 앞에 대령한다. 길버트 형제들은 거동이 불편한 엄마의 뒤치다꺼리를 군소리 없이 해낸다.

 

길버트의 엄마는 회피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현실에서 도망치는 데 급급하다. 핑곗거리가 있으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녀의 핑곗거리는 거대한 몸이다. 그녀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니’를, 거대한 몸을 핑계 삼아 길버트에게 떠넘긴다. 자기 몸을 핑계 삼으면 일할 필요도 없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가족들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씻겨준다. 몸은 갈수록 거대해지고, 거대해지는 몸만큼 불편한 마음도 커지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겠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길버트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기괴한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를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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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아니’는 지적장애인이다. 아니가 태어났을 때, 의사 선생님은 아니가 얼마 못 살고 죽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니는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 18살 생일을 앞두고 있다. 아니는 천진난만하다. 그리고 악의 없이 사고를 친다. 그래서 길버트는 한시도 아니에게 눈을 뗄 수 없다. 길버트는 아니를 사랑하지만, 가슴속에 분노 게이지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슈퍼마켓 직원으로서 대형마트에 가지 않은 건, 길버트에게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아니의 생일을 기념해 만든 케이크가 망가지는 바람에 불문율을 깰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데 불문율을 깨고 산 케이크마저 아니가 망가뜨리자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결국 길버트는 목욕을 거부하는 아니에게 폭력을 쓴다. 아마도 그는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거 같다. 희망이 없는 동네,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 엄마, 사고뭉치 아니, 깐죽거리는 여동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 길버트의 화를 돋우는 요인은 차고 넘친다. 길버트는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가족들 뒤치다꺼리만 하며 살 수 없다는 생각이 극에 달했을 때, 때마침 천진난만한 아니가 악의 없는 사고를 쳤고, 길버트의 분노는 애꿎은 아니에게 향했다. 그는 마을을 떠나려고 하지만 끝내 그러지 못한다.

길버트 같은 상황이라면 가족이 자기 발목을 잡는 짐 같은 존재로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로 길버트는 가족 때문에 여러 제약에 부딪힌다. 그는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아니를 살펴야 한다. 또 그가 고향을 떠나면 가족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길버트에겐 사랑도 사치일 뿐이다. 할머니와 함께 캠핑카를 타고 다니며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는 ‘베키’는 여러모로 길버트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베키와 달리 길버트는 자신이 사는 동네와 가족을 떠날 수 없다.

길버트를 옭아맨 건 어쩌면 길버트의 마음가짐인지도 모른다.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을 다하고 있는데, 길버트는 애써 그들의 수고로움을 외면했을 수도 있다. 자신이 사람들의 놀림거리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길버트의 엄마는 가족을 위해 변화의 발걸음을 힘겹게 내디딘다. 길버트의 생각과 달리 엄마도 나름 노력을 하고 있었다. 또 길버트는 베키가 아니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동생과의 소통 방식을 되돌아보게 된다. 답답한 현실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건 너무나 손쉬운 방법이다. 그전에 나를 먼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남 탓만 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