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놉 (2022)
감독 : 조던 필
출연 : 다니엘 칼루야(OJ 헤이우드 역), 키키 팰머(에메랄드 헤이우드 역)
내 멋대로 쓴 <놉> 리뷰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 X 설립자는 인간을 화성에 이주시키겠다고 공언하였다. 만약 일론 머스크의 계획이 실현된다면 사람들은 천재, 최초 등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그를 기억할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회사 설립자이고 그의 입을 통해 화성 이주 계획이 발표되고 있으니 그에게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거대한 프로젝트가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진행되는 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꿈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우리는 프로젝트에 힘을 보탠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진 않는다.
우리는 늘 상징적인 인물만 기억한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만 기억할 뿐, 닐 암스트롱 다음으로 우주선에서 내린 사람은 기억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폴로 11호를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애썼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나는 주연 배우만 기억한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제작진은 항상 내 관심 밖이었다. 솔직히 영화 제목도 헷갈릴 때가 많은데,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까지 기억하는 건 나에게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가급적 엔딩 크레디트는 끝까지 보려고 노력한다. 그게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거 같아서.
영국의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제작한 ‘움직이는 말’은 영화의 기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마이브리지는 일정한 간격으로 여러 대의 사진기를 배치하고 달리는 말의 사진을 찍었다. 촬영된 사진을 이어서 보니, 마치 말이 달리는 거처럼 보였고, 마이브리지는 영화사에 중대한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게 되었다. 숏폼 콘텐츠보다 짧은 길이의 이 영상은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말을 모는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나고 보니 그 영상이 영화의 기원이 되었듯이, 어쩌다 보니 그 기수는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하게 되었다. 후대의 관심은 최초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에게 집중되었다.
만약 내 조상이 영화의 시초에 등장한 그 기수라면, 나는 좀 섭섭한 기분이 들 거 같다. 우
리 조상도 일정 부분 공로에 대한 지분이 있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랄까. <놉>은 역사적 순간을 함께 했지만,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그 기수의 후손이 주인공인 영화다. 그들은 바로 ‘OJ 헤이우드’와 ‘에메랄드 헤이우드’. 근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움직이는 말’에 출연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진 바가 없다. 따라서 헤이우드 남매는 가상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제임스 카메론은 한 방송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시나리오와 캐릭터는 가짜고 배우들은 남을 흉내 내는 거죠. 다 뻔뻔한 거짓말이에요 ··· 하지만 사람들을 감동시키니까 아주 멋진 거짓말입니다."
아무튼. 헤이우드 남매는 ‘움직이는 말’에 출연했던 ‘알리스티어 E. 헤이우드’의 자손이다. 헤이우드 집안은 말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들이 키우는 말은 종종 영화에 출연하기도 한다. 에메랄드의 말마따나 헤이우드 집안은 영화 산업에 살짝 발을 담그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이 영화 산업에 일정 부분 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해주지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헤이우드 집안에 관심이 없다. 그런 OJ와 에메랄드에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사건이 일어난다. OJ의 말 농장 주변에 미확인 비행 물체가 나타난 것.
헤이우드 남매는 UFO를 찍어서 부와 명성을 얻고자 한다. 그동안 헤이우드 집안은 서서히 가세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촬영장에 말을 출연시키는 것 말고는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어서인지, 그들은 말을 팔아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한다. 그런 그들에게 UFO는 한 줄기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행복 회로를 돌리기 시작한다. 일이 잘 풀리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동안의 불운은 떨쳐버리고, 어쩔 수 없이 팔아 버린 말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들의 바람대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UFO 영상을 촬영해서 떼돈을 벌었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사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UFO가 아니었다. 그건 정체불명의 생명체였다. 그 생명체는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살아 있는 것들을 빨아들이고 소화가 안 되는 건 뱉어낸다. 뭐, 미확인 비행 물체면 어떻고 정체불명의 생명체면 또 어떠하랴. 사람들에게 소문이 퍼져서 너도나도 사진을 찍으러 몰려들기 전에 선수를 쳐서 한몫 잡는 거지. 다만 무턱대고 덤볐다간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OJ는 동물의 습성도 파악하지 않고 섣불리 접근하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아버지 밑에서 일하며 짬밥 꽤 먹은 베테랑이다. 그는 말 농장 후계자답게 괴생물체의 습성을 금방 파악해 낸다.
우여곡절 끝에 헤이우드 남매는 괴생물체를 촬영하는 데 성공한다. 세상은 주류에서 밀려나 변방에 머무르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SNS에 올릴 영상을 찍으려고 목숨을 거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 목숨을 가벼이 여긴다고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목숨 정도는 걸어야 그나마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 시대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최고, 최초, 1등을 동경해서인지 기사도 헤드라인만 읽고,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만 보고, 우리나라 선수가 메달을 딸 거 같은 스포츠 경기만 본다. 나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욕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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