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슬램덩크에 강백호만 있는 건 아니지…

iambob 2023. 2. 8. 15:17

제목 : 더 퍼스트 슬램덩크 (2022)
감독 : 이노우에 다케히코


더 퍼스트 슬램덩크

내 멋대로 쓴 <더 퍼스트 슬램덩크> 리뷰

나름 슬램덩크를 열심히 보았는데… 오랜 시간이 흐름 지금 내 머릿속엔 강백호, 서태웅 등 주인공들의 이름과 그들이 다니는 학교가 북산 고등학교라는 것밖에 남아 있지 않다. 농구에 ‘농’ 자도 몰랐던 강백호가 회를 거듭할수록 눈부신 성장을 해나간 건 알겠다. 그런데 그 과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북산 고등학교가 전국 대회에서 우승했었나. 아무튼 워낙 슬램덩크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어디 가서 이 만화를 봤노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그래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 속 몇몇 장면은 예전의 기억을 떠오르게 해 주었다.

강백호가 영감님이라고 부르며 감독님 턱을 떡 주무르듯 주물러대던 거라든지, 강백호가 사이드 라인 밖으로 나가는 공을 살리기 위해 몸을 내던졌던 장면, 강백호의 어이없는 실수들은 내 머릿속, 너무 오랫동안 열지 않아 녹슬고 삐거덕거리던 문에 기름칠해주었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을 끄집어내 주었더랬다. 그런데 맞아, 하고 무릎을 '탁' 치며 봤던 장면들은 주로 강백호와 관련된 것이었다. 아마도 슬램덩크가 강백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졌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번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강백호가 주인공이 아니다.

이야기는 송태섭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된다. 이 영화가 강백호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내놔야 했을 것이다. 팬들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재탕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이 영화를 봐야 할 당위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익숙한 길을 가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당시 슬램덩크 캐릭터들은 두루두루 인기가 많았다. 각 캐릭터가 저마다 매력이 넘쳐났다는 얘기다. 만화가 완결되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쯤 되면 슬램덩크 팬들은 강백호가 아닌, 자기가 좋아했던 캐릭터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답게, 슬램덩크에서 강백호 못지않게 존재감을 뽐낸 여러 등장인물 중 송태섭이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보여준다.

송태섭에게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그를 농구의 세계로 이끌었던 형마저 안타깝게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이자 스승 때론 친구 같았던 형의 죽음은 어린 태섭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송태섭은 형 못지않게 농구를 좋아했고 노력했으며 농구에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송태섭을 보며 죽은 형을 투영했다. 자신이 뛰어넘어야 할 상대가 하필이면 죽은 형이라니. 송태섭은 역설적인 상황에 빠지고 만다. 그에게는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송태섭만의 농구를 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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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슬램덩크가 인기를 끌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를 꼽자면, 전국대회가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거 같다. 토너먼트 특성상, 북산고는 매 경기 더 강한 상대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 강한 상대를 만나 북산고는 고전하지만 결국 승리를 거둔다. 만화를 보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더랬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정점을 향해가는 북산고는 사람들에게 대리 만족을 선사했다. 북산고가 도장 깨기를 하듯 실력 있는 팀을 하나하나 꺾어 나가는 모습은 흥미진진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경기를 거치면서 등장인물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송태섭의 농구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우여곡절이 있었고 형과의 비교를 견뎌내야 했다. 영화는 송태섭이 시련을 극복하고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북산고가 산왕 공고를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면서, 마침내 송태섭은 형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송태섭이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다른 선수라고 사연이 없는 게 아니다. 또 저마다 승리를 간절히 원한다. 전국 최강 산왕 공고는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전년에 이어 올해에도 전국대회 우승을 노리는 팀이다. 최고는 거저 되지 않는 법이라고 했던가. 산왕 공고의 정우성은 농구 실력이 최고 수준이지만 하루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경기에서 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북산고와 산왕 공고는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북산고를 응원하면서도, 새로운 기록을 써내려 가고 있는 산왕 공고를 생각하면, 마냥 덮어놓고 북산고만 응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마다 경기에서 이겨야 하는 명분이 있으니, 감정 이입을 어디에 하느냐에 따라 응원하는 팀과 선수가 달라진다. 경기 패배 후, 선수 대기실로 가는 복도에서 산왕 공고 선수들은 참았던 울음을 쏟아내는데,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더랬다. 그들의 노력을 허투루 보아 넘길 수 없기에 더 애처롭게 느껴졌나 보다.

북산고의 불협화음은 안 감독의 용병술 덕분에 하모니를 이루어 나간다. 아무리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나더라도 조화를 이루지 못 하면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송태섭은 빠른 스피드와 판단력, 정확한 패스를 토대로 팀을 조율한다. 그렇게 이 영화는 송태섭을 구심점으로 개성 강한 등장인물들이 한 팀이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슬램덩크에는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하는 힘이 있는 거 같다. 그 힘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파동을 일으켜 사람들이 슬램덩크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슬램덩크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