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롤] 잘못 끼운 단추

iambob 2023. 4. 14. 12:19

제목 : 캐롤 (2015)

감독 : 토드 헤인즈

출연 : 케이트 블란쳇(캐롤 역), 루니 마라(테레즈 역)



내 멋대로 쓴 <캐롤> 리뷰

단추를 잘못 채운 사랑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인간관계는 노력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 거 같다. <캐롤>의 주인공 ‘캐롤’은 이혼 소송 중이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그녀는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상황에 따라 다를 테지만, 결혼 적령기의 남녀는 결혼을 하여 한 가정을 이룬다. 캐롤도 마찬가지다. 캐롤이 남편을 어떻게 만났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그녀는 남편 ‘하지’와 결혼해서 사랑스러운 아이를 얻었다. 근데 캐롤이 남편을 사랑한 적이 있긴 한 걸까. 여러 가지 정황상 그녀가 떠밀리듯 결혼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거 같다.

캐롤은 동성애자이다. 동성에게 마음이 끌리는데 부부 생활이 원만했을 리 없다. 의미 없는 결혼 생활은 가족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그쯤에서 관계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캐롤은 잘못된 관계를 바로잡길 원했을 것이다. 서로 사랑하다 관계가 소원해진 경우라면 어찌어찌 노력해서 관계 회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캐롤 같은 경우, 그런 기대 자체가 불가능하다. 남자를 사랑할 수 없는데 어떻게 부부 관계를 예전 상태로 되돌리겠나. 캐롤은 어긋난 관계를 바로잡을 최선의 방법이 이혼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캐롤의 이별 통보는 다소 일방적이다. 캐롤의 커밍아웃으로 하지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캐롤은 하지가 뜻밖의 사실을 용납하고 이해할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몇 년을 같이 산 배우자가 알고 보니 동성애자라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나. 상대방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고 배우자의 마음을 되돌리고 싶고 상황을 바로잡고 싶을 것이다. 자신이 동성애자와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캐롤은 남편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해하라고 강요하기보다 혼란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주었어야 했다. 이혼은 어긋난 관계를 빨리 정리할 순 있지만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지는 않는다.

캐롤의 남편 ‘하지’는 캐롤에게 아직 미련이 남아 있는 거 같다. 그는 가정이 깨지는 걸 원치 않는다. 또 노력하면 다시 예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캐롤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성적 지향이란 게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의 사랑은 집착으로 변한다. 캐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고 느낀 그는 그녀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뺏으려 든다. 그건 바로 그들의 딸이다. 캐롤이 감옥 같은 결혼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딸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는 딸이 캐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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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별이란 게 존재할까. 캐롤과 하지의 이혼 소송은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한다. 하지는 양육권을 빼앗으려고 캐롤의 약점을 파고든다. 그는 캐롤이 레즈비언이라는 증거를 모으기 위해 미행과 도청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게 모은 증거로 그는 캐롤이 동성애자임을 문제 삼아 그녀가 엄마로서 자격이 없음을 부각하려 한다. 캐롤은 잘못 끼운 단추를 바로잡고 싶었을 뿐인데 엉뚱하게도 부부간의 갈등을 딸에게 고스란히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이별은 서로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긴다. ‘테레즈’와 그녀의 남자 친구 ‘리차드’는 그다지 쿨하지 못한 이별을 한다. 리차드는 테레즈와 결혼하길 원한다. 하지만 테레즈는 그와의 결혼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캐롤의 등장은 테레즈와 리차드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테레즈가 캐롤을 만난 이후로 그녀와 리차드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진다. 리차드는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테레즈가 캐롤과 여행을 떠나기로 하면서 결국 리차드의 감정은 폭발하고 만다. 그는 두 사람이 머지않아 헤어질 거라며 테레즈에게 악담을 퍼붓는다. 이별을 앞둔 연인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그 말들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히고 서로의 밑바닥을 확인시켜 준다.

아웃팅을 당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두려운 일이다. 동성애자는 자신의 성적 지향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외부에 알려져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거나 범죄 행위의 표적이 되진 않을까 우려한다. 그래서 동성애자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구태여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캐롤도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긴 채 살아왔다. 그게 딸을 위하는 거로 생각했다. 그녀는 딸에게 동성애자인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척 연기를 해야만 했다.

자신을 부인하며 살던 캐롤은 어느 순간 현타가 온 듯하다. 누군가는 딸을 생각해서 살던 대로 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캐롤만 참으면 가족에게 평안이 찾아올까. 딸을 위한답시고 평생 불행을 감내하고 살 순 없는 노릇이다. 그건 캐롤뿐만 아니라 딸과 남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캐롤의 불행을 방치하면 가족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게 뻔하다.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 때문에 커밍아웃을 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캐롤에게 이혼은,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 딸 앞에 당당히 서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