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툴리] 독박 육아의 무서움

iambob 2023. 4. 21. 09:00

제목 : 툴리 (2018)
감독 : 제이슨 라이트만
출연 : 샤를리즈 테론(마를로 역), 맥켄지 데이비스(툴리 역), 론 리빙스턴(드류 역)



내 멋대로 쓴 <툴리> 리뷰


누나는 말했다. 임신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하겠는데 육아는, 두 번은 못 하겠다고. 그만큼 육아가 힘들었다는 뜻이겠지. 조카를 낳고 몇 달간 누나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어 보였다. 우선 잠을 깊이 잘 수 없었다. 아기의 배고픔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서 새벽에도 몇 번씩 깨어나 밥을 달라고 울었다. 그러면 누나는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고 일어나 분유를 탔다. 분유만 먹인다고 끝이 아니었다. 트림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잠을 재우고 나면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일련의 과정을 끝내 놓고 다시 눈을 붙일라치면 또 조카는 잠이 깨고… 누나는 똑같은 일을 반복, 반복, 반복…

조카가 어느덧 통잠을 자고 이유식을 먹게 되었을 때, 새로운 고생이 시작되었다. 이유식을 만드는 데는 여간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누나는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 밑 작업을 해야 했다. 쌀을 곱게 갈고 야채는 잘게 다지고 몇 시간씩 육수를 우려서 기름기를 걸러내고 그걸 소분해서 얼리고... 밑 작업은 초저녁에 시작해서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그동안 이유식은, 죽 비슷한 거겠거니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생각한 거였다. 달걀과 김으로 한 끼를 때울 때가 많은 지금에 비교하면 이유식은 엄청난 정성이 담긴 음식이었다.

조카가 말하고 걸을 무렵엔, 계속 안아달라고 해서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전엔 내가 안아줘도 그럭저럭 잘 안겨 있더니 엄마와 애착 관계가 형성된 뒤로는 누나한테만 안겨 있으려고 했다. 조카는 외출하면 얼마 못 가 이내 안아달라고 보챘다. 아기 때와 달리 제법 몸무게가 나갈 때라 오랫동안 안고 있기 힘들었다. 그 때문에 웬만하면 걷게 하려고 갖은 말로 어르고 달래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조카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유모차도 타려고 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준비한 유모차는 늘 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당시 조카 사진을 보면 누나에게 안겨 뒤통수만 찍힌 게 많다.

누나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육아에 지친 부모가 다 그렇듯 누나도 육퇴를 간절히 원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고된 하루를 보낸 누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휴식 시간은 조카가 잠들었을 때였다. 그래서 누나는 조카를 그렇게 일찍 재웠나 보다. 뭐, 육퇴를 해도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쉴 틈이 없어 보였지만. 매형은 일이 바쁜 관계로 조카를 볼 시간이 별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육아는 누나 몫이 되었다. 육아를 오로지 혼자 감당했다면 누나도 육아 스트레스로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누나는 비빌 언덕이 있었다. 누나는 수시로 친정에 찾아와 며칠씩 머물며 육아 부담을 내려놓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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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나의 육아를 단편적으로 봐서 실제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지 못한다. 그냥 짐작만 할 뿐이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지 않는 한 영원히 육아의 고충을 이해할 수 없겠지. 영화 <툴리>의 주인공 ‘마를로’는 셋째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아직 부모 손이 필요한 초등학생 딸과 유치원생 아들에 조만간 태어날 갓난아이까지, 마를로의 고생길은 안 봐도 훤하다. 아니나 다를까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마를로에게는 헬게이트가 열린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여성의 출산과 육아는 동서양 할 거 없이 누구에게나 고된 일이다.

남들보다 조금 특별하다는 둘째는 마를로의 육아 난이도를 극상으로 끌어올린다. 유치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둘째는 친구들과 트러블이 생길 때가 많다. 유치원에서 마를로를 가만히 둘 리 없다. 원장은 수시로 마를로를 호출해서 둘째를 다른 유치원에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다그친다. 이는 마를로의 육아 스트레스에 기름을 들이붓는다. 육아로 정신이 없는데 둘째까지 말썽을 일으키니 마를로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간다. 근데 둘째는 문제가 있는 아이가 아니라 그저 관심이 필요한 아이일 뿐이다. 마를로가 출산과 육아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둘째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엄마 몸은 하난데 사랑을 나눠줘야 할 아이가 여럿이면 엄마는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육아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마를로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육아 도우미 ‘툴리’다. 툴리는 마를로의 숨통을 틔워준다. 그녀는 마를로가 자는 동안 아기를 돌보는 것은 물론 빨래며 청소 같은 집안일을 해두고 둘째의 유치원 친구들에게 나눠줄 컵케이크까지 구워 놓는다. 툴리의 도움으로 한시름 던 마를로는 그녀 덕분에 삶의 질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또 툴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 그런데 사실 툴리는 마를로가 만들어 낸 허상이다. 극심한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던 마를로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고, 그런 간절함이 허상을 만들어 낸 걸로 보인다.

마를로의 남편 ‘드류’는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다. 그는 마를로가 수유하느라 잠을 거의 못 자는데도 한 번을 도와주지 않는다. 또 퇴근 후에는 침대에 누워 비디오 게임 하기 바쁘다. 드류는 아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런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메를로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한 뒤에야 그동안 아내가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육아는 혼자서 할 수 없다. 주변에서 도움을 줘야 한다. 그러나 육아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사회 분위기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경력 단절, 독박 육아 등은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주저하게 만든다. 육아는 한 인격체를 키워내는 고귀한 일이다. 보람을 느껴야 할 육아가 적어도 두려운 일이 돼서는 안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