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영화에 몰입할 수 없었던 이유

iambob 2024. 10. 16. 10:05

제목 : 패스트 라이브즈 (2023)
감독 : 셀린 송
출연 : 유태오(해성 역), 그레타 리(나영 / 노라 역)



<패스트 라이브즈> 리뷰


이 영화를 보면서 눈에 거슬렸던 점을 적어 보려 한다.

‘해성’과 ‘나영’은 어렸을 때 헤어져 성인이 되어 재회한다. 영화에서 어린 해성과 나영은 아역 배우가, 2, 30대의 해성과 나영은 ‘유태오’와 ‘그레타 리’가 연기했다. 내가 신경 쓰였던 부분은 해성의 20대 때 모습이었다. 20대는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시기이다. 그런데 해성은 20대치고는 많이 성숙해 보였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청춘 영화나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들은 우락부락한 것과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근육질이긴 해도 몸집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런데 해성은 어떠한가. 군대에서 고생했는지, 평소에 선크림을 안 바르고 다녔는지, 20대의 해성에게서 소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벌크업한 몸은 후드티를 입어도 가려지지 않았다. 누가 그를 보고 20대라 하겠는가. 유태오 배우가 소년미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한 방송에 유태오 배우의 아내가 나와 남편의 소년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유태오 배우가 무명이던 시절, 그녀는 남편의 소년미를 지켜주기 위해 남편 대신 고생을 자처했다고. 그러면서 유태오 배우의 젊은 시절 사진이 자료 화면으로 나왔는데, 과연 그녀의 말대로 그에게서 소년미가 흘러넘쳤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유태오 배우에게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지만 그게 소년미는 아니다.

<아이리시맨>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의 젊은 시절을 보여주기 위해 디에이징 기술을 사용하였다. 이 기술 덕분에 영화는 젊은 배우를 섭외하지 않고 등장인물의 젊었을 때 모습을 구현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제작비가 빠듯한 작품에서는 이런 특수 효과가 언감생심일지도 모른다. 참고로 <아이리시맨>의 제작비는 1억 5,900만 달러에 달했다. 모든 작품이 고가의 특수효과를 사용할 수 없기에 대부분의 작품은 젊은 배우가 등장인물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 뭐라 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젊었을 때와 나이 들었을 때의 얼굴이 달라도 사람들은 그걸 영화적 허용이라 생각한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유태오 배우에게 어려 보여야 한다는 부담을 안겨주었을 거 같다. 불혹을 넘긴 배우가 20대인 척하는 모습이 나는 여간 어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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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 라이브즈>에서 눈에 거슬렸던 부분은 또 있다. 바로 해성이 영어를 할 때였다. 한국인이 아무리 입시 위주의 영어를 배운다 해도 ‘Hi.’, ‘How are you?’, ‘Nice to meet you!’ 정도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거의 세뇌가 될 정도로 자주 접하는 문장이니까. 그런데 해성은 나영의 남편을 만나 더듬더듬 ‘Nice to meet you!’라고 말한다. 첫사랑이었던 여자의 남편을 만난 게 겸연쩍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영 남편이 배고프냐 묻는 말에 무슨 말인지 몰라 하는 해성을 보니, 겸연쩍어서 그랬던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해성은 간단한 인사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영어 실력이 형편없었던 거다.

해성이 영어를 못할 수도 있다. 영어 울렁증에 시달리는 건 해성뿐만이 아니니까. 내가 어색하다고 느꼈던 건 해성이 영어를 못하는 척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다. 그렇게 보였던 이유는 유태오 배우가 영어를 잘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독일에서 나고 자라, 오랜 시간 외국 생활을 해왔던 터라 데뷔하기 전까지 한국어가 서툴렀다고 한다. 배우가 토크쇼에 나와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면 아직도 외국인 특유의 발음과 억양이 남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해성이 하는 말은 살짝 외국인이 하는 한국말처럼 들린다. 영어를 잘하는 배우가 영어를 못하는 연기를 하니 마치 한국인이 한국어를 못하는 척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공연히 트집을 잡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배우를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봤을 것이고, 누군가는 배우의 한국어를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들었을 것이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신경 쓰였던 건 배우의 인터뷰를 봐서였을까.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배우의 젊은 시절 모습과 성장 배경을 알게 되었다. 그날의 인터뷰는 유태오란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패스트 라이브즈>라는 영화에 몰입하는 데에는 방해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영화 속 인물과 배우의 본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때로 배우는 영화 속 인물로 분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지워야 한다. 이 영화에서 배우는 해성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지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