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다] 이해와 배려

iambob 2025. 2. 22. 10:40

제목 : 코다 (2021)

감독 : 션 헤이더

출연 : 에밀리아 존스(루비 로시 역), 트로이 코처(프랭크 로시 역), 퍼디아 월시-필로(마일스 역)



<코다> 리뷰

음악회 관람 시 지켜야 할 에티켓 중 하나. 조용히 할 것. 공연 중 휴대전화는 꺼두거나 매너 모드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음악회에서는 연주자나 관람자 모두 소음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므로 헛기침이나 부스럭거리는 소리, 옆 사람과 수군거리는 소리 등도 주의해야 한다. (#음악회 관람 예절) 그런데 ‘루비’의 가족은 음악회를 보면서 그런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다. 그들은 왠지 부산스럽다. 음악회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과장된 손짓으로 뭔가 속삭인다. 내 옆자리에 이런 사람이 앉아 있다면 상당히 신경이 거슬렸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루비 가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그들의 매너 없는 행동에 대해 비난과 험담을 늘어놓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행동했던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이 다름 아닌 청각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루비가 노래 부르는 걸 보려고 음악회를 찾았는데 정작 가족들은 루비의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그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니 그저 곁눈질로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고, 음악회와 관련 없는 대화를 나누고, 따분하게 무대를 지켜보는 수밖에. 그들 눈에는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이 마치 입만 벙긋거리는 붕어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그들은 루비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청각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같은 하늘 아래 있지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거 같다. 청각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는 거대한 벽이 가로막혀 있어서 서로 분리되어 버린 건 아닐는지. 세상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 때문에 비장애인은 청각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알지 못한다. 설 자리를 잃은 청각 장애인은 이방인처럼 겉돈다. 게다가 청각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비장애인은 청각 장애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거대한 벽은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을 낳았다. 비장애인은 색안경을 끼고 청각 장애인을 바라본다. 조롱과 멸시를 견뎌온 청각 장애인은 비장애인에게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청각 장애인이라고 비장애인이 이해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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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의 엄마는 루비의 재능을 이해하지 못한다. 루비가 학교 합창단에 들어갔다고 하자 엄마는 딸이 겉멋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루비의 재능을 깎아내린다. 딸의 재능을 알아봐 주지 않는 엄마가 언뜻 매정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루비의 엄마가 평생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소리와 단절된 채 살아온 엄마로서는 딸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시각 장애인이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고 불가해한 일로 보였을 것이다. 루비의 엄마는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는 상황에 부닥치자, 그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기보다 거부하거나 무시했을 뿐이다.

루비와 ‘마일스’는 음악회에서 듀엣으로 노래를 부른다. 영화는 두 사람의 연습 장면에 꽤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무대에 오른 루비와 마일스. 그런데 두 사람이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영화가 서서히 정적에 잠긴다. 음향에 문제가 생겼나 싶었는데 이윽고 의도된 연출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제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루비 가족만이 아니다. 우리 역시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이로써 우리는 루비 가족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영화는 보는 이의 감각을 차단함으로써 청각 장애인의 고충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끔 한다.

몇 분의 정적으로 청각 장애인의 고충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냐마는, 겪어보지 않으면 그마저도 알 수 없다.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험조차 하지 않았다면 청각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겪었을 어려움을 아예 모르고 살아갈 뻔했다. 공연을 보고 난 뒤 루비의 아빠는 노래를 부르는 루비의 목에 손을 대 본다. 손끝으로 전해진 소리의 울림은 아빠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비로소 아빠는 루비의 재능을 이해하게 된다. 몰이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장벽을 쌓아 올렸다. 하지만 그 벽을 허무는 길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서로에게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