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3)
감독 : 조나단 글래이저
출연 : 크리스티안 프리델(루돌프 회스 역), 산드라 휠러(헤트비히 회스 역)

<존 오브 인터레스트> 리뷰
창원시는 유기동물보호소 3곳에서 보호 중이던 유기견들을 돌보기 위해 세금 96억 원을 써서 동물센터를 만들었다. 애초 창원시는 보호소에서 유기견 700마리를 모두 데려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건물을 짓고 나니 수용 가능 면적이 줄어 500마리밖에 옮길 수 없었다. 시는 초과한 유기견에 대해 입양을 보내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127마리를 안락사시켰다. 시청은 동물보호법 규정에 따라 인도적으로 처리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안락사가 유기견 입장에서도 과연 인도적이었을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법 뒤에 숨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도리에 어긋나더라도 무신경할 수 있다. 시청은 합법의 탈을 쓰고 쉬운 길을 택한 건 아닐까.
#관련 기사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박물관이 되었다. 가스실, 소각장, 산처럼 쌓여 있는 희생자들의 신발과 유품 등은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량 학살의 현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별로 개의하지 않는다. 너무 자주 봐서 익숙해진 것인지 직원들은 무신경한 얼굴로 수용소 곳곳을 쓸고 닦는다. 충격, 공포, 연민, 슬픔 같은 감정은 이곳에서 일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참고
‘회스’ 가족의 집과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다. 회스의 집에서는 담장 너머로 비명 소리, 고함치는 소리, 총소리 등이 들려온다. 나였으면 귀에 거슬려서 신경 쇠약이 걸렸을 거 같은데, 이 집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일상생활을 이어간다. 애써 무시하는 게 아니라면 그들은 그런 소리에 무신경해진 것이 분명하다. 수감자들이 수용소에서 비인간적인 고난을 겪는 것과 달리 회스 가족의 삶은 윤택하다. 회스 가족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위해서라면 불편도 감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루돌프 회스’와 직장 동료, 외주 업체 직원이 회스의 집 응접실에서 사무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대화 내용이 섬뜩하다. 그들은 24시간 쉬지 않고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소각실에 대해 구상 중이다. 한 번에 태울 수 있는 사람의 수도 놀랍거니와 그렇게 태우고 또 태울 사람이 있다는 것도 놀랍다. 그들의 대화에서 죄책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비인간적인 일을 하는 것에 무신경하다. 오로지 효율, 체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조직 생활에서 개인은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회스는 도덕적 판단은 접어두고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기로 한 거 같다.
우리는 무언가에 무신경해지면 맹목적, 무비판적으로 사고하고 그것에 무감각한 상태가 된다. 시청 공무원은 법을 무비판적으로 해석해서 동물센터의 설립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아우슈비츠 박물관 노동자들은 참혹한 역사적 현장에서 태연하게 일한다. 회스 가족은 담장 너머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것에 무감각하다. 회스는 자신이 하는 일에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조직에 맹목적으로 순종한다. 그런데 이들만 제 일에 무신경한 걸까. 이런 일은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따지고 보면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악은 우리가 무언가에 무신경할 때 태어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틈을 타 악은 사회를 좀먹는다. 평범해 보이는 가족 곁에서 천인공노할 만행이 자행됐던 건 사람들이 그것에 무신경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한 뒤, 유대인 말살을 저지른 아이히만은 그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이었으며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고 주장했다. #참고 그런데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익명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을 ‘잠재적 아이히만’으로 만드는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는 인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했다. 인간관계 안에서 인간성을 근거로 사유하지 않는 사람은 아이히만 같은 무사유의 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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