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리뷰

iambob 2020. 11. 12. 20:32

제목 : 살인자의 기억법

작가 : 김영하

출판사 : 문학동네


△ <살인자의 기억법> 표지


QUOTES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때까지만 전문가로 보인다. (42)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98)
악은 무지개 같은 것이다. 다가간 만큼 저만치 물러나 있다. (115)

STORY

살인자가 치매에 걸려 정신적 혼란을 겪는 이야기.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

OPINION

1

연쇄 살인마였던 사람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살인을 멈출까, 아니면 예전 기억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면,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를 할 텐데, 그런 경우가 없어서,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치매 환자는 최근 기억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기억이 역순으로 없어지므로, 현재는 살인을 멈췄다 하더라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과거의 자신이 살인을 부추길 수도 있을 거 같다. 무서운 건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지각하지 못한 채, 사람을 죽인다는 것일 테다.

 

2

김병수는 연쇄 살인마다. 김병수의 기억은 뒤틀리고 왜곡되어 있다. 그가 데려와 키웠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은희는 사실 요양보호사였다. 김병수는 박주태가 최근 자신의 동네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의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주태는 살인범이 아니라 형사였다. 은희는 어느 날 결혼할 남자라고 박주태를 데리고 오는데, 박주태는 수사를 위해 은희를 몇 번 만난 게 전부다.

 

독자는 김병수의 기억에 의존해 소설을 읽는다.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이 제시하는 정보를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어쩔 수 없다. 작가의 의도를 따라갈 수밖에. 소설은 김병수가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에 급하게 휘갈겨 메모한 포스트잇을 벽에 붙이듯,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를 이어 붙여 놓았다. 김병수의 머릿속이 뿌연 안개가 낀 것과 같이,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는 독자 역시 무엇이 진실인지 알지 못한 채, 답답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3

다른 나라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심신미약인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죄를 감해준다.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이면 책임능력이 떨어진다고 보아 처벌이 감경되는 것이다. 그동안 이를 악용한 사례가 언론을 통해 많이 보도되었고, 국민적 공분을 산 경우가 많아, 요즘은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한 판결도 나오고 있는 거 같다.

 

김병수는 심신미약 상태이다. 기억이 사라져 가는 알츠하이머 환자인데 더 말해 뭐하겠는가. 그는 김은희를 죽였지만,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요양보호사 김은희 가족의 신고로 탐문 수사를 벌여오던 경찰은 김은희가 방문하던 집을 대상으로 수사를 이어오다 김병수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그를 체포한다. 김병수의 집 근처에서 그동안 그가 죽인 사람들의 뼈가 다수 발견된다. 김병수는 과거의 일은 순순히 자백하지만, 김은희를 살해한 사실은 부인한다. 과거의 살인은 공소시효가 지나 더는 죄를 묻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비록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더라도 증거가 있으니 김은희를 죽인 것에 대해서는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김은희 살인 사건을 일반적인 살인 사건처럼 다룰 수 있을까.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량이 줄거나 도리어 국가의 보살핌을 받게 되는 건 아닐까.

 

4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설도 다르게 읽히는 거 같다. 이전에는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던 사회 문제가 세월이 흘러 공론화될 때가 있다. 작가가 심신미약 감형을 염두에 두고 이 소설을 썼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여전히 뜨거운 이슈인 이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학작품은 시대를 달리하며 다양한 해석을 내놓기 마련인 거 같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관계로, <살인자의 기억법>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에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없어 안타깝다. 불교의 공(), 니체의 사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철학적 고찰을 할 깜냥도 안 된다. 무거운 질문에 대한 답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낫다. 나는 비록 그 부분을 읽지 않았지만, 다행히 소설 뒤에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실려 있으니, 이 소설이 뜻하는 바가 궁금한 사람은 그 해설을 읽으면 되겠다.


살인자의 기억법
국내도서
저자 : 김영하(Young Ha Kim)
출판 : 문학동네 201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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