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엑시트] 엑시트가 어려운 한국의 소셜 케이지

iambob 2025. 8. 20. 14:14

제목 : 오픈 엑시트

지은이 : 이철승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오픈 엑시트 / 이철승 / 문학과지성사


<오픈 엑시트> 리뷰

# 1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는 회생 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허가했다. 하지만 홈플러스 노조와 입점 점주들은 인수합병이 무산될 것을 우려한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생계의 위협을 받는 그들은 정부에 관심과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 2 법률 사무소에 고용된 어쏘 변호사들의 성장기를 다룬 드라마 <서초동>. 이 드라마는 어쏘 변호사들의 고충, 애환, 성취를 그리고 있는데, 그들이 인생 2막을 여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 3 송정훈 컵밥 대표는 학창 시절 춤만 추던 문제아였다. 30대 초반까지 방황을 이어가던 그는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가정을 꾸렸다. 미국에서 그는 치기공 기술자로 일했고 카드 판매업 사업을 하기도 하였다. 2013년 송 대표는 푸드트럭을 몰고 다니며 컵밥을 팔기 시작했다. 노량진 컵밥 문화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는 컵밥 판매로 연 매출 600억 원대를 올리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 참고


예로든 사람 중 누구는 소셜 케이지에서 탈출했고, 누구는 그러지 못했다. 소셜 케이지는 한 인간이 특정한 사회적 관계나 집단, 조직을 탈출하고자 할 때, 이를 좌절시키거나 단념시키는 ‘심리적-제도적-환경적 장벽(23쪽)을 말한다. 엑시트 옵션이 다양할 때 우리는 케이지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수 있다. 홈플러스 직원과 입점 점주는 엑시트 옵션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존폐의 기로에 있는 회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반면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인 <서초동>의  어쏘 변호사들 앞에는 여러 선택지가 놓여 있다. 극 중 누군가는 법률 사무소를 개업했고, 국선 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한 사람도 있으며, 어떤 이는 경력 검사 시험에 응시해 합격한다. 송정훈 대표는 한국을 떠나 더 넓은, 더 많은 엑시트 옵션이 존재하는(122쪽) 미국으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한국 사회는 엑시트 옵션이 적다. 정년퇴직 후 너도나도 치킨집을 차리는 걸 보면. 한국 경제에 자영업자, 특히 ‘노인 사장님’이 많은 이유는 노후 준비가 제대로 안 된 탓이 크다. 준비 안 된 퇴직자는 계속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단순노무직 또는 자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이 없는 경우 재취업이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자격이나 기술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식당이나 카페 등 요식업으로 뛰어들게 된다. ※ 관련 기사


한국의 대기업 노동자들은 내부 노동시장에 갇힌 채 기업 특수 기술에 올인한다. 한 회사에 장기간 머무르며 대기업의 특정 업무, 특정 공정에 특화된 기술만 갈고닦았을 경우, 다른 기업으로 옮겼을 때 그 기술은 쓸모없어지고 새로운 기술에의 적응은 힘들어진다. 따라서 내부 노동시장에 오래 갇혀 있을수록, 그 회사에서만 쓸모 있는 인재가 된다. (124쪽) 고학력 중장년들은 엑시트 옵션의 부재로 인해 필사적으로 현 직장에 매달린다. 반면 정규직의 특권을 꿰차지 못한 비정규직 중장년들은 열악한 일자리를 오가다 노후 대비에 실패한 탓에, 노동시장에서 엑시트하지 못한 채 노동하는 노인으로 살아간다. (126쪽~127쪽)

청년들은 점점 줄어드는 양질의 소수 정규직 일자리를 두고 쟁투하다 좌절하여 취업을 포기하거나 외국으로 엑시트한다. (126쪽) 한국은 시험 중심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특정 직업군에 진입하기 위한 학력과 자격증 취득 경쟁이 10대와 20대에 걸쳐 벌어지며, 이후 그 계층 구조가 고착화된다. 직업 이동성이 제한되기 때문에 직장 이동성도 낮다. 학벌이 직업/직장 이동성을 막는 것이다. (64쪽)

우리에게 엑시트 옵션이 적은 이유는 한국 사회가 벼농사 체제의 영향을 받은 것과 무관치 않다. 벼농사 전통에 뿌리를 둔 ※ 인용 동아시아 특유의 소셜 케이지는 마을에서 형성되어 전승된 공동 노동조직과 이를 사회문화적으로 떠받치는 커뮤니티 구조다. 강력한 내부 규율과 상호 감시 기제가 작동하며, 진입도 어렵지만 빠져나오기도 힘든 사회적 연결망이자 협동 노동조직이다. 소셜 케이지를 통해 그 외부에 사회적 · 제도적 장벽을 쌓기 때문이다.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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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지대 동아시아의 엘리트들은 높은 교육 수준을 바탕으로, 대기업 정규직 혹은 전문직의 안정적 지위를 내부 노동시장 기제를 통해 보호받으며, 닫힌 조직 안에서 지위 이동(승진) 경쟁을 벌여 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동아시아의 엘리트들은 조직의 상층으로 진입할수록 숙련도는 떨어지며 엑시트 옵션은 줄어들게 된다. 그들은 가능한 한 네트워크 위계를 최대한 넓히고, 하급자들을 최대한 착취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131쪽~ 132쪽)

벼농사 체제가 야기하는 부작용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벼농사 체제인 나라에서는 모든 일을 함께한다. 도시의 공장과 사무실에서 프로젝트는 팀 단위로 굴러간다. 팀원들은 팀장의 지휘하에 여러 가지 일을 함께, 분업을 통해, 하지만 상호 조율하에 처리한다. 이는 어느 일이 누구의 것인지 특정할 수 없게 한다. (225쪽) 협업 조직에서는 서로 제대로 일하는지 격려하고, 감시하고, 채근하며, 싫은 소리 하다 달래주면서 조직이 무리 없이 굴러가도록 조율한다. (226쪽) 눈치 보고 눈치 주는 이 조율된 협업 시스템은, 개인이 조직을 우선시하도록 강제한다. (227쪽) 그래서 협업 조직에서 육아휴직을 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으로 협업에서 빠지면 조직에 피해를 주게 되고, 그 사람이 하던 일은 나머지 팀원이 떠맡게 된다.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차별을 받는 것 역시 벼농사 체제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벼농사 체제는 오랜 세월 가족과 씨족 단위의 자급자족 재생산 시스템을 만들어 외부 세계로 나갈 필요도 교류할 필요도 없는 강력한 소셜 케이지를 만들었다. 케이지 속 내부인은 외부인의 진입 시도를 ‘텃세’와 ‘배제’를 통해 좌절시킨다. (264쪽~265쪽) 한국은 강력한 벼농사 체제를 발달시켰기 때문에 타 지역이나 타 문화권의 외부인들이 네트워크에 진입하는 것에 호의적이지 않다. (265쪽) 

한국의 소셜 케이지는 지금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엑시트 옵션이 부재하고,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며, 우리 사회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을 배척한다. 문제는 명확한데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언제까지 못 본 척 외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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