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워 오브 도그] 엄마를 지키려는 한 남자의 복수극

iambob 2022. 8. 15. 00:10

제목 : 파워 오브 도그 (2021)
감독 : 제인 캠피온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필 버뱅크 역), 제시 플레먼스(조지 버뱅크 역), 커스틴 던스트(로즈 역), 코디 스밋 맥피(피터 역)



내 멋대로 쓴 <파워 오브 도그> 리뷰

얼마 전 배우 이정재가 자신의 영화 홍보차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날 이정재는 분홍색 재킷과 흰색 팬츠를 입었고 진주 목걸이를 착용했다. 출연진들은 그의 알 굵은 진주 목걸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아마도 남자가 진주 목걸이를 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그랬을 게다. 그의 패션에 대해 너도나도 한 마디씩 거들자, 이정재는 스스로 청담동 사모님 느낌이라고 말해서 주변의 웃음을 자아냈다.

최근의 패션 경향을 보면 갈수록 성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남자들도 핸드백을 메고 여성들이 즐겨 입던 색상의 옷을 입고 화려한 주얼리로 치장한다. 이정재 역시 요즘 패션 트렌드를 따랐을 것이다. 목걸이는 남녀노소 누구나 착용하는 액세서리다. 보통은 금목걸이를 할 테지만 남자가 진주 목걸이를 한다고 해서 딱히 문제 될 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정재를 생경하게 바라봤다는 건, 아마도 그들이 진주 목걸이는 여자들이 하는 장신구라는 인식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진주 목걸이는 여자들의 전유물이니까 남자가 착용하면 남자답지 못하다고, 이 방송은 은연중에 시청자에게 각인시켰다. 불특정 다수가 시청하는 방송은 다양한 시선을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 그런데 이날 방송은 다분히 일방의 시각만 전달했다. 여자 없이 남자로만 채워진 고정 출연자들의 눈에는 이정재의 패션이 낯설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고정 출연자들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이정재의 입에서 자신을 희화화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오랜 시간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을 강요받으며 살았다. 남자답지 못한 아이에게 고추가 떨어지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여자답지 못한 아이에게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파워 오브 도그>의 ‘필’은 마초 성향이 짙은 인물이다. 그는 남자답지 못한 ‘피터’를 조롱한다. 피터가 보는 앞에서 피터가 접은 종이꽃을 불태우고 피터의 복장을 보고 비웃으며 피터의 복장을 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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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오브 도그>는 엄마를 지키려는 한 남자의 복수극이라 할 수 있다. 피터의 엄마 ‘로즈’는 필의 동생 ‘조지’와 결혼한다. 필은 로즈가 못마땅하다. 그는 그녀가 돈 때문에 동생과 결혼했다고 생각한다. 버뱅크 형제 집에 들어가 살게 된 로즈는 필과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로즈는 필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필 때문에 신경 쇠약에 걸릴 판인 로즈는 점점 술에 의존한다.

의대에 진학한 피터는 방학 동안 로즈가 있는 버뱅크 형제의 집에 머무른다. 그리고 우연히 필의 은밀한 성적 취향을 발견한다. 피터는 필만의 내밀한 장소를 찾아내는데, 그곳에 있는 작은 오두막엔 필이 동경하는 ‘브롱코 헨리’의 나체 사진집이 있었고 강가에서는 필이 남몰래 야릇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필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더 남자답게 행동했던 걸까.

필과 피터는 자신의 방식대로 남자다움을 해석한다. 말을 타고 드넓은 벌판을 달리며 소 떼를 모는 건 예로부터 남자들의 일이었다. 필은 전통적인 남성상을 따르는 게 목장을 운영하면서 여러 카우보이를 거느리기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피터는 필과 결을 달리한다. 이 영화는 피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난 엄마가 행복하기만 바랐다. 엄마를 돕지 않으면 난 사내도 아니지. 엄마를 구할 수밖에.” 피터에게는 로즈를 지키는 일이 남자다움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외적인 모습은 그에게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닐지도 모른다.

피터가 필의 약점을 손에 쥔 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어떤 종류의 감정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필과 피터는 미묘한 감정의 교류를 나눈다. 하지만 로즈는 필 때문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의 행복을 바란다면, 필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피터는 결정적인 순간 필을 제거할 기회를 잡았고 결국 실행에 옮긴다. 필과 피터는 세상이 만들어낸 표상에 갇혀버린 인물들이다. 필은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살아야 했고 피터는 가족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다. 세상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다 보면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되고 사고의 확장은 저해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