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휴고] 어떤 영화인에 대한 회고

iambob 2022. 8. 22. 00:05

제목 : 휴고 (2011)
감독 : 마틴 스콜세지
출연 : 에이사 버터필드(휴고 역), 클로이 모레츠(이자벨 역)



내 멋대로 쓴 <휴고> 리뷰

‘조르주 멜리에스’는 마술사였다. 어느 날 그는 아내와 함께 서커스 구경을 갔고, 한 천막에서 짧은 영화 한 편을 보았다. 그 영화는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이었다.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진짜 열차가 달려오는 줄 알고 혼비백산했다. 조르주는 영화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뤼미에르 형제는 조르주에게 카메라를 팔 마음이 없었기에 그는 직접 카메라를 만들기로 한다.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는 스튜디오를 세우고 세트를 짓고 감독과 배우를 겸하면서 수백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는 눈속임으로 사람들을 현혹한다는 점에서 마술과 닮은 부분이 있었다. 조르주는 필름을 자르고 이어 붙이면 없던 사람이 갑자기 뿅 나타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상 편집의 시작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상을 화면에 구현해 내기 위해 미니어처 기법, 합성 등 다양한 촬영과 편집 기법을 시도했다. 영화는 조르주에게 전부나 다름없었고 그에게 큰 성공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영화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조르주는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는 기차역에서 장난감을 팔며 생계를 유지한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조르주는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간다. 조르주가 제작했던 수많은 영화의 필름은 녹아서 구두 굽이 되었으므로 그를 기억할 만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영화는 조르주에게 행복을 주었지만 동시에 아픔도 주었다. 영화 때문에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맛보았기 때문이다.

<휴고>는 조르주 멜리에스를 기리는 영화이다. 영화는 종종 나에게 몰랐던 사실을 가르쳐 주곤 한다. 언젠가 TV에서 사람 얼굴을 한 달에 로켓인지 미사일인지가 날아가 눈에 콕 박히는 장면을 본 적 있다. 훗날 내 머릿속엔 눈에 미사일이 꽂힌 채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달 이미지만 남았다. <휴고>를 보고 나서야 나는 그게 조르주 멜리에스가 만든 영화 <달 세계 여행>의 한 장면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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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그리고 옛것은 빠르게 잊힌다. 잊혀 가는 걸 어떻게 붙들 수 없지만, 가끔 그 의미를 되새길 필요는 있지 않을까. 이 영화가 조르주 멜리에스를 현재로 불러낸 거처럼. 현재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과거가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과거를 효용 가치를 다한 구닥다리 정도로 치부하곤 한다.

<휴고>에서 조르주 멜리에스는 잊힌 과거이다. 파리 역 안을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현재를 나타낸다면 ‘휴고’와 ‘이자벨’은 미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기성세대는 과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 내는 건 미래 세대이다. 휴고는 이자벨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세상이 큰 기계라고 상상하곤 했어. 기계엔 불필요한 부품이 들어 있지 않아. 딱 필요한 것만 모여 하나가 되잖아. 그래서 내 생각엔 온 세상이 하나의 큰 기계라면 내가 쓰이는 곳도 어딘가 있을 거야.”

아직 쓰임이 정해지지 않은 미래가 제 역할을 다했다고 여겨지는 과거를 현재로 데리고 나왔다는 건 세상이 과거, 현재, 미래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는 걸 의미할 테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매년 한 해 동안 세상을 떠난 영화인을 추모하는 ‘인 메모리엄’ 공연을 갖는다. 유명 아티스트가 공연을 펼치는 동안 무대 뒤편 스크린에서는 세상을 떠난 영화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간다. 한국의 시상식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해마다 인 메모리엄 무대를 정성 들여 꾸미는 건 영화를 위해 헌신한 영화인들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마음가짐을 보여 준다.

영화와 등지고 살며 영화의 ‘영’자도 꺼내지 못하게 하던 조르주였지만, 휴고와 이자벨의 노력으로 그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다. 조르주의 생각과 달리 모든 사람이 그를 잊은 건 아니었다. 조르주의 팬이었던 ‘르네’는 조르주의 영화를 발굴해 일종의 회고전을 연다. 사람들은 조르주의 영화를 보며 함께 웃고 즐긴다. 그 모습을 조르주는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조르주 멜리에스는 영화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게 기쁨이었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