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매의 여름밤] 훗날 남매의 여름밤은 어떻게 기억될까.

iambob 2022. 9. 13. 14:01

제목 : 남매의 여름밤 (2019)
감독 : 윤단비
출연 : 최정운(옥주 역), 박승준(동주 역), 양흥주(아빠 역), 박현영(고모 역), 김상동(할아버지 역)



내 멋대로 쓴 <남매의 여름밤> 리뷰

<남매의 여름밤>은 여름 방학 동안 ‘옥주’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옥주의 가족은 저마다 고민이 있다. ‘아빠’는 자식 건사해서 먹고살 일이 걱정이다. ‘고모’와 나누는 대화로 미루어 보아, 아빠는 사업을 한답시고 ‘할아버지’ 재산까지 끌어다 쓴 모양인데, 손을 대는 사업마다 족족 망한 듯하다. 지금은 짝퉁 신발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근데 벌이가 영 시원찮아 보인다. 게다가 살던 동네가 재개발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집에 얹혀살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뭐라도 해보려고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지만 머리가 예전만큼 잘 돌아가지 않는 거 같다.

옥주의 고모는 남편과 별거 중이다. 할아버지와 오빠에게는 비밀에 부치고 있었는데 남편이 할아버지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비밀이 탄로 나고 만다. 고모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남편이 자신을 괴롭히려고 태어난 요괴 같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성격 차이로 헤어지려는 듯하다. 친구 집에 얹혀사는 게 염치없어지려고 할 때쯤, 할아버지가 더위를 먹어 쓰러지셨고 그 참에 할아버지 집에 눌러앉아 버리기로 한다. 고모는 아빠보다 할아버지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덜 받아서 그런지 할아버지의 재산 처분에 적극적이다.

옥주는 자기가 남자친구를 더 좋아하는 거 같아 고민이다. 남자 친구의 뜨뜻미지근한 태도가 외모 때문이라 생각한 옥주는 쌍꺼풀 수술을 하기로 결심한다. 옥주는 아빠에게 수술비를 빌려줄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하지만 아빠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런 아빠가 옥주는 못내 서운하다. 옥주는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아빠의 짝퉁 신발을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린다. 그런데 거래남이 신발의 진품 여부를 의심하면서 옥주를 위기에 빠뜨린다.

‘동주’는 누나가 엄마를 못 만나게 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 번번이 약속을 어겨도 동주는 엄마가 좋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니까. 누나 말을 어기고 엄마를 만나고 온 날, 옥주는 동주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어째서 옥주는 그토록 엄마를 미워하게 됐을까. 아이의 장점 중 하나는 안 좋은 일을 마음에 오래 담아 두지 않는다는 거다. 어른이라면 꽁하고 있을 일이 건만, 동주는 누나와 라면을 끓여 먹으며 그날의 일을 툴툴 털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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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걱정이 제일 많은 사람은 할아버지가 아닐까. 아들은 사는 게 변변찮고 딸은 별거 중이다. 그들에게 등짝 스매싱이라도 날려줘야 할 거 같은데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자식들을 받아준다. 할아버지의 기력은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 간다. 할아버지가 용변 실수를 하자 아빠와 고모는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실 생각부터 한다. 심지어 아빠와 고모는 할아버지 의견은 묻지도 않고 할아버지 집을 팔아버리려고 한다. 옥주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다. 훗날 옥주의 가족은 그해 여름을 어떻게 기억할까. 내가 보기에 나쁜 기억만 남을 거 같지는 않다. 할아버지의 생일날 동주는 막춤을 췄고 가족들은 동주를 보며 박장대소한다. 해마다 할아버지의 생일이 다가오면 가족들은 배꼽 잡고 웃었던 그때의 일을 회상할 것이다. 옥주가 중고 거래를 하러 가던 날, 할아버지는 옥주가 선물한 모자를 쓰고 옥주에게 인자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식겁했던 그날의 일이 생각날 때면, 옥주의 머릿속에는 할아버지의 미소가 스쳐 지나갈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빠한테 그랬던 거처럼, 아빠는 방학이라 늦잠을 자는 동주를, 학교에 지각하겠다고 깨워서 깜짝 놀라게 만든다. 동주도 커서 자식이 생기면 아빠처럼 어처구니없는 장난을 치지 않을까. 옥주는 할아버지 기일이 되면, 장례식장에서 잠을 자다 꿈속에서 엄마를 만났던 기억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취사선택된 순간을 SNS에 올린다. 그곳에서는 삶의 어두운 면을 찾아볼 수 없다. 행복만 넘쳐날 뿐이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기에 SNS는 작위적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한 순간을 계속해서 보면 불편한 기분이 든다. 배가 아파서 그럴 수도. 우리의 삶에서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좋은 일이 있으면 안 좋은 일도 있기 마련이다. <남매의 여름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상의 희비를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어서 보다 우리의 삶에 가까워 보인다. 할아버지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를 닮았고, 아빠와 고모의 사정은 친척이나 이웃의 이야기 같으며, 옥주와 동주가 아웅다웅하는 모습은 내 형제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비슷하다. 누구나 이런저런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산다. <남매의 여름밤>은 특별하지 않아서 오래도록 시선이 머무르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