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끝까지 감추고 싶었던 비밀

iambob 2022. 9. 19. 22:00

제목 :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2008)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출연 : 케이트 윈슬렛(한나 슈미츠 역), 다비트 크로스(어린 마이클 버그 역), 레이프 파인즈(마이클 버그 역)



내 멋대로 쓴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리뷰

예전에 발라드와 댄스를 반반 섞어 놓은 여성 듀오의 노래가 있었다. 처음 그 노래를 들었을 땐 좀 낯설었다. 발라드와 댄스가 한 곡에 모두 들어가 있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랬던 거 같다. 뭐, 계속 듣다 보니 두 개의 장르가 정직하게 반반 섞여 있는 게 꼭 짬짜면 같기도 하고, 나중엔 그게 그 노래의 매력처럼 느껴졌다. <더 리더>는 서로 어울릴 거 같지 않은 두 이야기가 차례로 이어진다. ‘한나’가 ‘마이클’을 떠나기 전까지는 소년과 여인의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한나가 떠난 이후로 분위기는 급반전한다. 이야기의 무대는 법정으로 옮겨가고 영화는 관객에게 악의 평범성에 관해 묻는다.

한나는 수용소 경비원이었다. 죽음의 행진을 하던 수감자들은 어느 날 한 교회에 묵게 되었다. 그날 밤 마을이 폭격받았고 교회가 불타올랐다. 경비원들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마을을 보며, 더 큰 혼란이 초래될 것을 염려해 걸어 잠근 교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교회에 갇힌 수감자들은 모두 죽었고 한 아이만 살아남았다. 다른 경비원들은 어땠는지 모르나, 한나가 교회에 갇힌 사람들을 죽이려고 그런 결정을 내린 거 같지는 않다. 아마도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무질서한 상황을 정리해 보려 했던 게 최악의 결과를 불러온 게 아닐까 싶다.

한나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수용소에서 일하기 전, 그녀는 공장에서 근무했고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검표원으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일하는 그녀를 눈여겨본 관리자는 그녀를 사무직으로 승진시키려고 한다. 그 당시 한나는 일자리가 필요해 수용소 경비원이 되었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다. 수용소가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새로 들어온 수감자를 받으려면 기존에 있던 수감자를 내보내야만 했다.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 그녀는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괜한 동정심은 그런 일을 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을 테니까. 상부의 지시를 따랐을 뿐인 그녀는 과연 살인자일까.

이유야 어찌 됐든 수많은 사람의 죽음이 한나의 손끝에서 비롯되었다. 최종 결정권자의 지시를 비판 없이 수용한 결과이다. 한나처럼, 단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인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죄 행위에 가담하게 된 경우, 누구에게 죗값을 물어야 할까. 명령을 내린 사람일까. 명령을 따른 사람일까. 아님 둘 다일까. 사회 분위기가 개인의 합리적인 사고를 가로막을 때, 나라면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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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그릇된 선택을 한다. 그건 그녀가 글을 읽고 쓸 줄 몰라서이다. 그녀는 문맹인 게 탄로 날까 봐 번번이 승진 기회를 날려버리고 재판에서 불리한 진술을 한다. 치부는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다. 감출 수 있다면 끝까지 숨기는 게 옳다. 치부는 열등감에 빠지게 만들고, 열등감은 자존감에 영향을 준다. 한나에게 치부는 자존감과 직결된 문제였고, 치부가 드러난다는 건 그녀의 삶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치부가 드러나 수치를 당하는 것과 치부를 숨기는 바람에 법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 중, 어느 게 더 자신에게 해로울까. 뉴스에 나오는 어떤 피고인들은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몰염치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무거운 형량을 받는 것보다 안면몰수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그들은 피해자를 찾아가 합의를 요구하고 피해자가 아닌 판사에게 반성문을 제출한다. 한나는 자신의 비밀을 지키는 쪽을 택한다.

한나의 사정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문맹인 걸 숨기고 살았다. 법정에서 밝혀지나, 까막눈인 걸 밝히고 글을 배우나 치부를 드러내야 한다는 점은 매한가지나 다름없다. 한나는 어떤 경우라도 치부가 드러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거 같다. 결국 한나는 다른 경비원들의 죄까지 뒤집어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지켜낸 대가로 자존감을 지켰다. 극복 대상이었던 글은 스스로 깨우친다. 그리고 자살한다.

한나는 모범수로 조기 출소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왜 자살했을까. 감정은 배워서 익힐 수 있다고 한다. 한나는 마이클이 녹음해서 보내준 테이프와 책을 일일이 비교해 가며 글을 익힌다. 감옥에서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한나는 많은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글을 몰랐을 때는 미처 공감하지 못했던 인간의 여러 가지 감정을 책을 읽으면서 배웠을 것이다. 글을 다 깨우쳤을 때 한나는 지나온 세월이 문득 부끄러워졌는지도 모른다. 치부를 극복하고 나니 새로운 치부가 생겨난 꼴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문맹처럼 극복하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다. 한나는 교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아이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숨을 거둠으로써 자신의 마지막 자존감을 지키려고 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