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리 vs 매켄로] 최고라는 자리가 주는 부담감

iambob 2022. 10. 17. 12:36

제목 : 보리 vs 매켄로 (2017)
감독 : 야누스 메츠
출연 : 스베리르 구드나손(비외른 보리), 샤이아 라보프(존 매켄로)



내 멋대로 쓴 <보리 vs 매켄로> 리뷰

나는 한 번도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 뭐 하나 진득하게 끝장을 본 기억도 없다. 그럭저럭 살다 보니 그냥저냥 여기까지 왔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적당히 하는 건 없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내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한다. ‘비외른 보리’와 ‘존 매켄로’는 어렸을 때부터 될성부른 나무였다. 그들은 테니스를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타고난 재능에 노력이 더해졌으니 그들은 성공의 열매만 따면 될 터였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테니스는 흐름을 잘 타야 한다. 경기에서 지고 있더라도 상승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판도를 바꿔 놓을 수 있다. 테니스 중계를 보면, 경기에서 뒤지고 있던 선수가 어느 순간 상대 선수를 매섭게 몰아붙일 때가 있다. 서브 에이스가 연이어 터지고, 상대의 공격을 다 받아내고, 상대가 받아 칠 수 없는 공간으로 공을 보내고, 간간이 네트를 살짝 넘기는 행운도 뒤따른다. 반면 실책을 곱씹다 실수를 연발하는 선수도 있다. 더블 폴트를 하고, 회심의 공격이 번번이 막히고, 치는 공마다 라인을 벗어나고, 공이 네트를 넘지 못한다.

흐름을 잘 타고 실수에 연연하지 않기 위해서는 멘탈 관리를 잘해야 한다. 게임이 잘 풀린다고 경거망동해서도 안 되고 과거에 발목 잡혀 현재를 망쳐서도 안 된다. 테니스에서는 딱 한 포인트를 따내지 못해 다 이긴 게임을 놓치고, 아깝게 놓친 게임을 생각하다 나머지 게임을 망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멘탈 관리를 잘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흐름은 수시로 바뀔 수 있고 기회는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멘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승부를 뒤집을 기회를 영영 놓쳐버리고 만다.

어린 시절 보리는 승부욕이 강해서 결코 지려고 하지 않았다. 불리한 판정이라도 받은 날이면 차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그를 달가워할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보리를 문제아로 낙인찍었다. 하지만 코치 ‘베렐린’은 보리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보리에게 화를 다스리는 법을 훈련시켰다. 분노를 억누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쉽게 흥분하는 성격은 테니스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피나는 노력 끝에 보리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경기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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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켄로는 코트의 악동으로 불렸다. 그는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테니스 라켓을 내동댕이쳐 부러뜨리기 일쑤였고, 심판 판정에 거칠게 항의했으며, 상대 선수와 심판 심지어 관중에게까지 욕설을 내뱉었다. 관중들은 그런 매켄로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매켄로가 코트 위에 등장하면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 그런데 매켄로의 그런 행동은 고도의 전략으로 보이기도 한다. 속된 말로 깽판을 한 번 놓으면 상대 선수에게 넘어갔던 흐름이 그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보리는 매켄로가 자신과 비슷한 성격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챈다.

보리와 매켄로는 둘 다 다혈질이었다. 하지만 멘탈을 다스리는 방법은 정반대였다. 보리의 화는 경기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는 멘탈을 통제하는 방법을 취했다. 반면 매켄로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해서 흔들리는 멘탈을 다잡았다. 두 사람은 가는 길이 서로 달랐지만, 최종 목표는 경기 흐름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었다. 실력과 강한 정신력을 겸비한 그들은 마침내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가 되었다. 당시 보리는 세계 랭킹 1위였고 매켄로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1980년 윔블던 결승전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보리는 5년 연속 대회 우승을 노리고 있었고, 떠오르는 스타였던 매켄로는 첫 윔블던 우승에 도전했다. 과연 5년 연속 우승을 할 수 있을지, 사람들의 시선은 보리에게 쏠렸다. 우승에 대한 압박감은 보리를 내리눌렀다. <보리 vs 매켄로>는 세계 최정상의 자리가 얼마나 부담스러운 자리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반면 테니스 팬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던 매켄로는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최고의 선수와 겨뤄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일방적인 응원이 펼쳐지면 선수는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그날 보리와 매켄로는 박빙의 승부를 보여주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던가. 두 사람은 팽팽한 접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엎치락뒤치락하던 승부는 결국 보리의 승리로 끝난다. 사람들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보리에게 환호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준 매켄로에게 힘찬 박수를 보냈다. 이 경기를 끝으로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걷는다. 과중한 부담 때문이었는지 보리는 28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다. 매켄로는 이듬해 윔블던에서 우승하며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비슷한 듯 달랐던 보리와 매켄로는 이 경기를 계기로 절친한 사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