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메리칸 뷰티 (2000)
감독 : 샘 멘데스
출연 : 케빈 스페이시(레스터 버냄 역), 아네트 베닝(캐롤린 버냄 역), 도라 버치(제인 버냄 역), 웨스 벤틀리(리키 역), 미나 수바리(안젤라 역), 크리스 쿠퍼(프랭크 역)
내 멋대로 쓴 <아메리칸 뷰티> 리뷰
<아메리칸 뷰티>는 등장인물 여섯 명의 이야기가 얽히고설켜 있다.
우리는 종종 가족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간다.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치는 것과 같은 이치일 테지. 임종을 앞둔 부모 앞에서 평소 안부 전화 한 통 못 드린 걸 후회한 들, 죽을 때가 다 돼서 가족을 살뜰히 아껴주지 못한 걸 반성한 들 무슨 소용 있겠나. 뒤늦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아 봤자, 때는 이미 늦어버린 뒤다. ‘레스터’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딸 ‘제인’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있었다. 레스터는 딸의 친구 ‘안젤라’에게 성적 욕망을 품는다. 제인은 그런 아빠를 경멸한다. 심지어 레스터는 안젤라의 몸을 탐하려고 한다. 하지만 딸 같은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할 뻔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의 깨달음도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만다. 그는 ‘프랭크’가 쏜 총에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책임 전가는 책임을 회피하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다. ‘캐롤린’은 유복한 중산층의 삶을 동경한다. 그녀는 마당에 탐스러운 장미를 기르고, 거실에 값비싼 소파를 두고, 식사 시간에 고상한 음악을 튼다. 어릴 적 가난이 그녀를 속물로 만들었을까. 그런다고 그녀의 속물근성이 어딘가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레스터의 퇴직은 캐롤린의 속물근성에 기름을 들이붓는다. 그녀가 애써 지켜온 중산층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기 때문이다. 갑자기 가장의 역할을 떠맡게 된 캐롤린은 자신의 바람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큰돈을 벌려면 ‘부동산 킹’의 노하우를 배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동산 킹과 친밀감을 쌓을 수밖에 없다고.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그녀에겐 잘못이 없다. 레스터가 유능했더라면 애초에 바람을 피울 일도 없었을 것이다. 보냄 가족이 파탄에 이르게 된 데는 캐롤린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하지만 캐롤린은 자기반성 없이 끝까지 책임을 회피한다.
제인은 예쁜 애 옆에 있는 그저 그런 애다. 예쁜 친구 안젤라는 제인에게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사람이 안젤라를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제인을 위축시킨다. 심지어 아빠의 관심까지 안젤라가 가져가 버렸으니 제인의 자존감에 흠집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리키’는 예외다. 리키는 제인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리키는 안젤라가 제인과 붙어 다니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의 눈에는 안젤라가 그저 제인을 이용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의 가치를 갉아먹곤 한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잘난 놈보다 뭐라도 하나 나은 점을 발견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가슴 확대 수술을 받으려고 돈을 모았으나 이미 남부럽지 않은 가슴 사이즈를 갖게 돼 더는 그 돈이 필요 없게 된 제인처럼.
안젤라는 평범한 것보다 슬픈 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가끔 세상이 잘난 사람 위주로 돌아가는 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평범한 사람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투명 인간 취급당하기 일쑤다. 자기 외모가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상황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안젤라는 하이틴 잡지에 모델로 나왔던 경험이 있다. 그 일은 그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듯하다. 미모 덕분에 잡지 모델이 됐다고 생각한 안젤라는 자기 외모에 강한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녀는 유명한 모델은 떼 놓은 당상이고 자신이 유혹해서 안 넘어올 남자가 없다고 생각한다. 안젤라의 자신감은 풍선처럼 점점 부풀어 올라 속이 텅 빈 허세로 변한다. 하지만 리키가 제인을 좋아하고 레스터에게 성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안젤라의 허세는 펑 터지고 만다. 안젤라는 화려한 겉모습으로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리키는 새장에 갇힌 새다. 아빠 프랭크는 강압적인 방법으로 리키를 통제한다. 프랭크는 자기가 정해 놓은 규칙을 리키가 어길 시 폭력도 불사한다. 빗장을 풀어주지 않는 한 새장에 갇힌 새는 주인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 우리에 갇혀 지낸 동물은 같은 자리를 맴돌거나 무기력한 모습으로 잠만 자는 등 이상 행동을 일으킨다. 리키의 엄마도 너무 오래 갇혀 지내서 나는 법을 잊어버렸는지 모른다. 그녀는 정형행동을 하는 동물처럼 온종일 넋이 나가 있다. 반면 아빠의 오해로 빗장이 열리자 리키는 힘껏 날아오른다. 집에서 나가라는 아빠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프랭크는 퇴역 군인이다. 군인이라고 하면 왠지 원리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자답고, 무뚝뚝할 거 같다. 프랭크는 그런 이미지에 딱 부합하는 인물이다. 사실 모든 군인이 프랭크처럼 권위적이진 않을 것이다. 군대가 아닌 곳에서까지 군인답게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프랭크는 군대와 사생활의 경계가 허물어져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군인의 마인드로 살아간다. 그는 군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속에 자기 자신을 가둔다. 프랭크가 세운 규칙에 남자는 남자를 사랑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게이이면서도 게이를 혐오하는 거처럼 행동한다. 아들을 게이로 착각해 집에서 내쫓고 슬픔에 잠긴 그는 본의 아니게 레스터에게 커밍아웃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커밍아웃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아차린 프랭크는 결국 레스터를 죽이기로 한다. 평생 자기부정을 하며 살아온 프랭크는 레스터를 죽임으로써 예전의 삶으로 회귀한다.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레스터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레스터의 말마따나 분노, 불확실, 불안은 나이가 들어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착을 버리면 소박한 우리 인생에 감사할 일만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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