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천하장사 마돈나 (2006)
감독 : 이해준, 이해영
출연 : 류덕환(오동구 역)
내 멋대로 쓴 <천하장사 마돈나> 리뷰
‘동구’는 남자의 몸을 가졌지만,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성(性)을 바꾸려고 한다. 그건 전공을 뭐로 정할지, 어디에 취직할지, 누구와 결혼할지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우리는 남자나 여자로 태어난 이상 그 성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성별은 바꾸고 싶다고 아무 때나 뚝딱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동구에게 성전환 수술은 선택이 아니다. 잘못된 걸 바로잡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성별을 바꾼 후 동구 앞에 펼쳐질 미래가 그리 순탄치 않을 거라는 건 명약관화하다. 결정에 대한 책임이 아무리 동구 몫이라지만, 부모 입장에서 격랑 속에 뛰어드는 자식을 손 놓고 바라볼 수 없는 노릇이다.
남들과 다른 길로 들어선 동구를 부모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봐야 할까. 자식의 앞길을 응원해야 할까. 아니면 쥐어패서라도 막아야 할까. 동구의 부모는 극과 극의 반응을 보인다. 엄마는 동구의 결정을 지지하기로 한다. 동구에게 시련이 찾아오더라도 상처받지 않고 잘 헤쳐 나가길 바랄 뿐이다. 왕년에 권투 선수였던 아빠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동구를 바로잡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반발심을 불러일으킨다. 아빠의 생각은 동구의 결정을 바꿀 만큼 결정적 역할을 하지 않는다. 동구가 아빠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건, 아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을 것이다.
내 인생은 내 건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거 같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부모의 울타리 안에 있는 동안 자식은 부모가 정해 놓은 규칙을 따라야 한다. 부모 말을 잘 들어서 손해 볼 건 없다. 인생 선배의 가르침을 잘 따르면 사회에 나가서 실패할 확률이 줄어든다. 자식이 가시밭길을 걷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부모는 먼저 그 길을 걸어 보았기에 자식에게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둘 수 있다. 부모의 훈수가 잔소리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식이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부모의 역할이므로 부모는 참견을 멈출 수 없다.
갈등은 부모의 지나친 간섭에서 비롯한다. 어떤 부모는 자기 인생을 자식에게 투영한다. 자식의 앞길을 비춰주는 등대 역할 대신 플레이어가 되고자 한다. 무엇하나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자식은, 반항하며 엇나가거나 무기력하게 꼭두각시처럼 살아갈 것이다. 자식은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독립을 준비해야 한다. 언제까지고 부모의 그늘에서 살 수는 없다. 부모가 과도하게 자식의 일에 개입하면 그만큼 자식의 홀로서기가 늦춰질 뿐이다. 부모는 조금씩 자식에게 결정권을 줘야 한다. 자신의 결정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걸 가르쳐야 한다.
천하장사와 마돈나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천하장사는 육중한 몸매에 쫄쫄이 사각팬티를 입고 모래판 위에서 힘을 겨룬다. 반면 마돈나는 당시로선 파격이라 할 수 있는, 속옷 같은 무대 의상을 입고 퍼포먼스를 펼친 한 시대를 풍미한 섹시 아이콘이었다. 어울릴 거 같지 않은 천하장사와 마돈나를 등가에 놓은 건 모순에 빠진 동구의 상황을 나타낸다. 동구는 천하장사와 같은 육체를 가졌지만, 마돈나 같은 정신을 지녔기 때문이다.
동구가 씨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아이러니하다. 동구는 성전환 수술을 받으려고 아르바이트한다. 힘들게 번 돈을 아빠 합의금으로 날려버리고 꿈이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 기회가 씨름이다. 절망적 상황에서 발견한 재능이 하필이면 씨름이라니. 자신의 꿈을 위해 남성성을 버려야 하는 동구가, 남성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씨름 대회에 출전해서 받은 우승 상금으로 성전환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보인다.
내 희망… 그거? 너 그게 나한테 얼마나 잔인한 줄 알아?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거야.
동구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동구의 꿈은 직업 선택하듯 장차 하고 싶은 걸 고르는 게 아니다. 잘못된 걸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동구가 여자였다면, 일본어 선생님은 동구의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제자의 갑작스러운 고백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자신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에 내심 어깨가 으쓱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구에게 현실은 냉혹하다. 일본어 선생님은 동구를 변태라고 부르며 그 상황을 모면하기 급급하다.
동구는 그저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도 여느 여자들처럼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사랑하는 남자 앞에 떳떳하게 서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여자가 되려는 동구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것이다. 나 또한 주절주절 동구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동구 같은 사람을 만나면 구경거리라도 난 듯 신기하게 쳐다볼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한 동구는 평생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들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 남들과 다른 길을 가야만 하는 동구에게 구태여 나까지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보태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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