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르만 로맨스] 설득력이 부족한 그들의 로맨스

iambob 2022. 11. 14. 16:37

제목 : 장르만 로맨스 (2021)
감독 : 조은지
출연 : 류승룡(김현 역), 오나라(미애 역), 김희원(순모 역), 성유빈(성경 역), 무진성(유진 역), 이유영(정원 역)



내 멋대로 쓴 <장르만 로맨스> 리뷰

사랑의 작대기를 그어 보자. ‘김현’과 ‘미애’는 이혼했다. 그들에겐 고등학생 아들 ‘성경’이 있다. 현은 바람난 여자와 결혼해서 어린 딸을 두었다. 미애는 ‘순모’와 사귀는 사이이다. 순모는 현의 오랜 친구이자 출판사 대표다. 소설가인 현은 자신의 책을 순모의 출판사에서 출판했다. 기혼 여성 ‘정원’과 성경은 썸을 탄다. 현은 대학교 교수이기도 하다. ‘유진’은 현의 수업을 듣는 학생인데, 현을 짝사랑한다. 관계 정리를 하고 보니 막장의 기운이 흘러넘친다.

현과 미애는 애정 행각을 벌이다 성경한테 들킨다. 이혼했는데 애정 행각? 뭐 그럴 수 있지. 예전엔 이혼하면 서로 볼 일이 영영 없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부부는 법적으로 남남이 되었다고 해서 칼로 무 베듯 딱 끝낼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특히 자식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으면 더더욱. 미성년자 자식의 부양을 위해 부모는 이혼했어도 지속해서 관계를 이어 나가야 한다. 현과 미애는 성경의 문제로 왕래가 잦은 편이다. 자주 만나다 보니 사랑이 다시 싹튼 건 아닐까. 문제는, 현은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미애는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데 있다. 제 짝을 두고 애정 행각을 벌이다니!! 그렇다면 현과 미애는 뭘 한 건가. 바람이라도 피운 건가. 성경 입장에서는 자기 집이 콩가루 집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요즘 TV를 보면 남의 연애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방송이 많다. 미애와 순모의 연애는 그런 방송에 나오기 딱 좋은 소재이다. 우선 미애는 입만 열면 전남편 이야기다. 아무리 둘의 공통분모가 현이라지만 미애는 좀 과도하다. 둘만의 여행을 떠났으면 알콩달콩 오붓한 시간을 가져도 모자랄 판에 미애는 전남편 이야기를 한다. 순모 입장에서는 서운할 법도 하다. 이는 두 사람의 갈등 요소가 된다. 이들의 이야기가 방송에서 다뤄졌다면 패널들은 어떤 훈수를 뒀을까. 아마도, 저 여자는 전남편을 잊지 못하는 거다, 사귀어 봤자 남자만 맘고생 할 거다, 차라리 헤어져라, 이런 말들이 오갔을 테지.

미애와 순모의 사랑은 떳떳하지 못한 구석이 있다. 굳이 숨길 이유가 없는데, 그들은 비밀 연애를 한다. 친구의 전처를 사랑하는 것과 전남편의 친구를 사랑하는 게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미애와 순모가 비밀연애를 하는 이유를 굳이 따져 본다면 아마도 주변의 시선 때문이겠지.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리는 걸 좋아한다. 미애와 순모의 사랑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딱 좋은 소재이므로 그들은 함구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지나친 관심은 숨을 곳을 찾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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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오히려 성경과 정원 쪽이다. 정원은 유부녀이고 성경은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미애와 순모의 사랑이 연애 참견 프로그램에 나올 법하다면 성경과 정원의 사랑은 뉴스, 시사 정보 프로그램에서나 볼 법하다. 성경과 정원의 이야기는 자극적으로 다루어지기에 십상이다. 우리는 그들의 사정에 관심이 없다. 사회 통념에 비추어 봤을 때 바람직하냐, 아니냐만 중요할 뿐이다. 그들의 사랑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전후 사정을 듣지도 않고 무턱대고 누군가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는 건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경은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아이이다. 여자 친구는 딴 남자의 아이를 가졌고, 이혼한 엄마, 아빠는 각각 배우자와 사귀는 사람이 있으면서 애정 행각을 벌인다. 성경이 방황할 때 정원은 성원에게 곁을 내어준다. 둘은 데이트 비슷한 걸 한다. 그리고 정원은 여지를 주고 성경은 오해한다. 적정선을 유지하는 듯했던 정원의 감정은 결국 성경에게 기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정원의 남편이 등장하면서 파국을 맞이하고 만다. 이들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쉽지 않다. 이들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우리는 누굴 비난할까. 언제나 섣부른 판단은 경계해야 한다.

단지 책만 읽었을 뿐인데, 작가와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할까. 유진은 현의 책을 읽고 현을 사랑하게 된다. 유진의 사랑이 개연성을 얻기 위해서는 그가 현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하다. 힘들 때 현의 책이 위안이 되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이 위안해주었다고 모두 작가를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니까. 삶이 고단할 때 좋은 책은 우리에게 힘이 되어 준다. 책에 대한 관심이 작가로 이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 관심이 사랑으로 직행하는 건 억지스럽다.

팬의 마음으로 작가를 사랑할 수는 있다. 그건 우상을 바라보는 마음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유진이 하는 짝사랑의 경우 보통 접점이 많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유진은 현에게 사랑의 감정을 키워 가지만, 현은 유진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았다. 이런 사랑을 대개 스토킹이라 부르지 않나? 뭐 유진이 현을 짝사랑할 수 있다 치자. 짝사랑은 자유니까. 그래서인지 유진은 현에게 고백하면서 현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현은 가정이 있는 이성애자이다. 생면부지 게이의 고백을 받고 당혹스럽지 않을 이성애자가 어디 있겠나. 영화는 현과 유진의 억지스러운 관계를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룬다. 캐릭터의 서사가 빈약하면 보는 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납득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