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치] 디지털 세상의 그림자

iambob 2022. 10. 31. 14:45

제목 : 서치 (2018)
감독 : 아니쉬 차칸티
출연 : 존 조(데이빗 역), 데브라 메싱(로즈메리 빅 역), 미셸 라(마고 역)



내 멋대로 쓴 <서치> 리뷰

우리는 우리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속속들이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할 테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 공간에 같이 살고,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서 내 가족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집에서는 과묵한 아들 녀석이 친구 앞에서는 그렇게 수다스러울 수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어느 어머니를 TV에서 본 적 있다. 의외의 아들 모습이 낯설었다나 어떻다나. 우리는 어떨 땐 가족보다 학교 친구나 회사 동료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가족이 모르는 의외의 내 모습을 친구나 회사 동료가 더 많이 알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볼 때와 사뭇 다른 가족의 모습은 나머지 가족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맞나 두 눈을 의심하게 되고,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의구심이 든다. <서치>의 ‘데이빗’은 딸 ‘마고’와 단둘이 살고 있다. 어느 날, 친구 집에서 공부하고 이튿날 돌아오겠다던 마고가 연락이 두절된다. 딸에게 불길한 일이 일어났음을 감지한 데이빗은 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다닌다. 그런데 딸과 조금이라도 교분이 있었던 아이들이 내놓는 답변은 하나같이 데이빗을 당황스럽게 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마고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거 같다. 심지어 마고는 데이빗이 준 피아노 레슨비까지 삥땅 치고 있었다. 마고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마고의 실종은 전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볼썽사나운 일들도 연출된다. 마고와 친하게 지낸 적 없다던 어떤 아이는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마고의 무사 귀환을 빈다. 또 다른 학교 친구는 SNS에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글을 써서 팔로워를 늘린다. 2차 가해도 일어난다. 인터넷에 데이빗이 살인범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지질 않나, 동영상 플랫폼에는 마고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영상이 올라온다. 사람들은 점점 마고의 실종을 가십으로 소비한다. 그리고 익명 뒤에 숨어서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쏟아낸 수많은 글이 인터넷에 도배된다.

타인의 비극을 돈벌이 수단이나 관심 끌기용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의 불행을 이야기하면서 후원 계좌를 열어 놓는 유튜버, 자기 일 아니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댓글러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에게 과연 공감 능력이란 게 있는지 의심이 든다. 그들이 피해자와 똑같은 감정을 느낄 필요는 없다. 다만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공감할 수 없다면 차라리 아무 짓도 안 했으면 좋겠다. 그들의 몰염치한 행동 하나하나가 기사가 되는 세상이다. 그런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눈이 다 피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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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치>를 허투루 보아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마고는 울적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아빠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데이빗은 애써 엄마 이야기를 피한다. 마고는 그런 아빠가 못내 서운하다. 어느 날 마고는 자신의 개인 방송에서 엄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한 여대생을 만난다. 암 때문에 엄마를 잃은 마고는 그 여대생에게 동정심을 느낀다. 하지만 이 여대생은, 예전부터 마고를 짝사랑했던 남학생이 마고에게 접근하기 위해 만든 가상의 인물이었다.

최근 스토킹 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영화에서는 스토킹 범죄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현실에서는 의도적으로 접근한 뒤 끔찍한 사고를 저지르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인터넷 게임에서 알게 된 여성이 자신을 차단했다는 이유로 앙심을 품고 여성을 스토킹 하다 급기야 집으로 찾아가 여성과 가족 모두를 살해한 어떤 스토커의 범죄 행각은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다. 우리는 디지털 세상에서 불특정 다수를 만난다. 현실 세계와 달리 디지털 세상에서는 나와 연결된 사람들의 면면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점은 꺼림칙하기 그지없다.

이 영화에서 나에게 섬뜩함을 안겨 준 부분은 가족과 연락이 안 될 때 속수무책, 그저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데이빗은 마고가 노트북을 두고 간 덕분에(?) 어찌어찌 딸의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혼자 쓰는 노트북인 경우, 가족이라도 비밀번호를 알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휴대전화 비밀번호는 말해 뭣하겠나. 영화에서처럼 웹사이트 비밀번호를 재설정하거나, 은행에 로그인하려면 인증 수단으로 휴대전화나 컴퓨터가 꼭 필요한데, 그걸 가지고 있다고 해도 비밀번호를 푸는 것부터 난관이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으면 사람은 무기력해진다. 데이빗과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면 경찰의 도움을 받는 것 말고 뭘 더 할 수 있겠나. 디지털 기기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를 거기다 넣어둔 바람에 디지털 기기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딸 친구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것도 딸의 통장 거래 내용을 열람하는 것도 이제는 막막하기만 하다. 언젠가부터 나는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는다. 휴대전화에 저장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종이와 펜도 들고 다니지 않는다. 휴대전화 메모장이 있어서다. 역으로 내가 곤란한 상황에 닥쳤는데 휴대전화까지 말썽이라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