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이라는 착각] 나는 제정신으로 살고 있을까.

iambob 2024. 4. 9. 09:00

제목 : 제정신이라는 착각
지은이 : 필리프 슈테르처
출판사 : 김영사



내 멋대로 쓴 <제정신이라는 착각> 리뷰

예전에 누군가와 남녀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크게 싸운 적이 있다. 나는 남녀평등이 민감한 주제란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는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상대방은 남녀가 평등하다고 했고 나는 여전히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했다. 상대방은 유튜브에서 보고 들은 걸 이야기했고 나는 신문과 뉴스에서 봤던 걸 이야기했다. 상대방은 언론 보도가 편향되어 있어서 믿을 수 없다고 했고 나는 공신력 있는 언론사의 말을 안 믿으면 누구 말을 믿어야 하냐고 반박했다. 상대방은 자기가 경험했던 일을 들먹이며 오히려 남자가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했고 나는 내 지인의 경험담을 예로 들며 맞섰다. 우리는 끝까지 자기 말만 맞다고 으르렁거렸다.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디서 이상한 이야기를 주워듣고 와서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우기는 모습이 어이없었다.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다. 세상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고, 음모론을 믿지 않으며, 루머에 휘둘리지 않고,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내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 그의 말은 아무리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해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의 사고방식은 편협했고, 논거의 신빙성이 떨어졌으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거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날 격앙해서 언성을 높이는 내 모습을 보며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스스로 여러모로 굳게 확신하는 세계상을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의 확신이 자신의 확신과 일치하면 그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미쳤다’,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한다. (50쪽) 난 스스로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언론사의 뉴스 중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고 있었고, 관심을 끄는 루머는 사실일 수도 있겠거니 지레짐작했으며, 주로 생각이 비슷한 사람과 대화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내 생각이 보편적이라고 굳게 믿었다. 따지고 보면 나도 그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나는 제정신이라는 착각에 빠져 내 생각이 무조건 맞다는 신념에 차 있었다.

우리는 복잡성을 줄이고, 수월하게 실용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 단순하게 분류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분류하면 한쪽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즉 ‘우리’와 ‘다른 이’를 구분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51쪽~52쪽) 그 사람과 말싸움을 하고 난 뒤, 나는 그 사람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생각을 뒷받침하는 기사를 검색했고 기사 밑에 달린 댓글도 하나하나 읽어 보았다. 내 생각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기사와 그 기사를 옹호하는 댓글을 읽으며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간혹 기사를 반박하는 댓글이 보이면 ‘싫어요’를 눌렀고, 기사를 옹호하는 쪽과 반박하는 쪽의 대댓글을 우리 편 이겨라, 하는 심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우리는 우리의 확신이 합리적이고 사실에 토대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우리는 종종 스스로 속는 듯하다. (88쪽) 우리는 어떻게 해서 확신에 도달할까. 우선 우리는 주어진 증거를 토대로 세계상을 만든다. 아니면 스스로 증거를 검증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서 확신을 넘겨받았을 수도 있다. 확신에 도달하는 이 두 가능성은 인지 편향에 취약하다. 데이터에서 뭔가를 배우고자 할 때, 우리의 뇌는 계속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혹은 우리가 예측하도록 돕는 패턴을 찾는다. 이에 더해 우리는 인과적으로 설명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패턴을 발견하면 그 원인도 설명하고 싶어 한다. (89쪽~90쪽) 인지 편향은 우리가 신념을 만들고 유지하는 면에서 종종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게끔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는 걸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95쪽)

이 세상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가고자 한다면 최대의 인식적 합리성, 즉 현실 그대로 세계를 인식할 수 있(135쪽)어야 한다. 그러나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매 순간 돌다리를 두들겨서는 한 걸음 떼기도 여의찮을 것이다. 주변에 위해 요소가 없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진실을 탐구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다 보니 비용 - 편익을 위해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153쪽)기도 한다. 외모와 인성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데 마치 상관관계가 있는 거처럼 패턴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비합리적 결론, 확신, 행동으로 이어지는 인식적 오류를 저지른다. (144쪽)

뇌는 자신의 예측과 감각 기관이 감지하는 신호를 종합해 세상에 대한 지각을 만들어낸다. (191쪽) 우리의 뇌에서는 인지적 예측과 지각적 예측이 이루어진다. 위계질서의 가장 높은 수준에서는 인지적 예측이 위치한다. 추상적 사고에서의 예측이다. 확신도 거기에 속한다. 위계질서의 낮은 수준에서는 지각과 직접 관련된 지각적 예측이 이루어진다. (260쪽) 위계질서상 높은 수준에서의 예측에 더 강한 비중이 주어지는 것은 위계질서상 낮은 수준에서의 예측과 감각 데이터 사이의 상대적 불균형을 통해 지각의 불확실함이 발생하는 데 대한 일종의 상쇄 메커니즘일 수 있다. 따라서 위계질서상 더 낮은 수준이 일을 충분히 잘하지 못하면 높은 수준이 지휘권을 넘겨받을 수 있고, 그로써 확신을 굳게 고수할 수 있는 것이다. (268쪽~269쪽)

세상은 너무 넓고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여서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으로 세상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뇌는 예측 기계가 되어 내적 세계 모델과 주어지는 감각 데이터를 끊임없이 비교해 세계상을 구성한다. 이런 비교에서 뇌의 제일가는 모토는 최대한 진실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기에, 인식적 비합리성이 생겨난다. (296쪽) 확신은 우리에게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옳은 것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주관적 확실함에 오도된 채 자신의 확신만이 옳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3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