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삶은 흐르는 강물 같다

iambob 2024. 6. 11. 09:06

제목 : 흐르는 강물처럼

지은이 : 셸리 리드

출판사 : 다산책방



<흐르는 강물처럼> 리뷰

독자들을 위한 독서 모임 가이드

우리는 어떤 곳을 집이라고 부를까? 아마도 편히 쉴 수 있고,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고, 내 편이 되어줄 가족이 있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으며,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곳을 집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그런데 ‘빅토리아’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집이 없다. 빅토리아는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고 어린 나이에 집안 살림을 떠맡았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빠는 슬픔을 잊으려는 듯 죽어라 일만 했다. 사고뭉치 남동생은 안하무인이 되었으며, 전쟁에서 다리를 잃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이모부는 빅토리아 집에서 더부살이로 지내며 빅토리아한테 부담을 주었다. 빅토리아에게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빅토리아에게 집은 힘든 가사 노동을 마치고 잠시 눈을 붙이는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댐 공사로 고향이 수몰되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도 물에 잠기고 만다.

17살에 빅토리아는 ‘윌’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윌은 빅토리아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작가가 윌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우리는 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지 못한다. 작가가 제공하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윌이 어떤 사람인지 추론해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가 윌의 정체를 베일에 가려둔 이유는 뭘까. 윌은 좀 신비로운 구석이 있다. 이 소설은 윌을 마치 영적인 힘을 가진 현자처럼 그리고 있다. 만약 작가가 윌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려줬다면 윌의 신비로움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편견을 배제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다. 윌이 살아온 배경은 우리에게 쓸데없는 편견을 심어줄 수도 있다. 작가는 우리가 불필요한 편견을 가지게 되는 걸 경계했던 건 아닐까.

빅토리아의 인생은 상실로 점철되어 있다. 엄마, 사촌 오빠, 이모는 빅토리아가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인종차별은 사랑했던 윌의 목숨을 앗아갔다. 빅토리아는 윌의 아이를 밴다. 그녀는 낡은 관습, 사람들의 눈을 피해 홀로 산에 들어가 아이를 낳는다. 그녀는 아기와 단둘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지만 가혹한 현실은 그녀의 의지를 꺾어 버렸고 결국 아기를 포기하게 만든다. 빅토리아는 가족 곁으로 돌아간다. 그로부터 얼마 뒤 아빠가 폐병으로 죽는다. 상실이 빅토리아에게 상처만 준 건 아니다. 상실을 통해 빅토리아는 조금씩 성장한다. 강인함은 작은 승리와 무한한 실수로 만들어진 숲과 같고, 모든 걸 쓰러뜨린 폭풍이 지나가고 햇빛이 내리쬐는 숲과 같다. 우리는 넘어지고, 밀려나고,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최선을 희망하며 예측할 수 없는 조각들을 모아가며 성장한다. (416쪽)


이 소설에서 편견은 갈등을 유발하고 오해를 낳는다. 편견에 빠진 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윌을 도둑으로 몰아붙였다. 윌에게는 현상금이 붙었고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다. 결국 인종차별 때문에 윌은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만다. 괜한 오해를 받는 사람은 윌 말고도 또 있다. 빅토리아의 마을에는 ‘루비앨리스’라는 노파가 살고 있었다. 노파의 겉모습과 행동거지는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어렸을 때 빅토리아의 엄마는 빅토리아에게 루비앨리스와는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곤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엄마의 눈에는 루비앨리스가 살아 있는 악마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루비앨리스는 마을 사람들에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루비앨리스가 딱히 해를 끼치는 게 아니니 그냥 내버려 두고 없는 사람 취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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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는 마을 사람 중 가장 먼저 땅을 팔았다. 댐 공사를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은 빅토리아에게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땅을 판 빅토리아의 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동안 마을에서 겪었던 상실의 아픔은 빅토리아에게 너무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상실의 고통은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마을은 어렸을 때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곳이지만 편견과 낡은 관습이 지배하는 세상이기도 했다. 빅토리아가 땅을 판 건 과거의 기억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굳은 의지로 볼 수 있다.

빅토리아가 고향과의 연결 고리를 완전히 끊어 버린 건 아니다. 빅토리아네는 할아버지 때부터 마을에서 복숭아 농사를 지었다. 할아버지가 복숭아 농사를 짓는다고 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관적인 얘기를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밭을 일궈 최고의 복숭아를 길러냈다. 그리고 아빠는 할아버지의 가업을 뒤이었다. 과수원은 할아버지와 아빠가 피땀 흘려 일군 노력의 결실이었다. 할아버지의 복숭아나무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역경을 이겨냈다는 점에서 복숭아나무는 빅토리아의 인생과도 닮았다. 빅토리아가 과수원을 구하려고 마음먹은 표면적인 이유는 할아버지와 아빠 때문이었다. 하지만 빅토리아의 내면 어딘가에서는 복숭아나무에 자신의 인생을 투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빅토리아는 과수원에서 기르던 모든 복숭아나무를 새로 정착한 땅에 이식한다.

12 

조그마한 샘에서 발원한 냇물은 개울물이 되고 강이 되어 바다로 흘러간다. 물이 지나는 길 앞에는 적지 않은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다. 그래서 물은 굽이치고 솟구치고 소용돌이치고 떨어지기도 하며 흘러간다. 우리도 살면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셀 수 없이 흔들리고, 넘어지고, 무너지고, 두려움에 웅크린다. (415쪽) 그러나 우리 삶은 지금을 지나야만 그다음이 펼쳐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가 없고 초대장이 없더라도 눈앞에 펼쳐진 공간으로 걸어 나가야만 한다. (281쪽) 흐르는 강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