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급류에 휩쓸려 버린 삶

iambob 2025. 4. 28. 13:06

제목 : 급류
지은이 : 정대건
출판사 : 민음사



<급류> 리뷰

이 세상에 별일 없이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삶은 예기치 못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살다 보면 여러 일이 일어나는데 그 가운데 어떤 일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그러한 일은 불시에 찾아오기 때문에 미리 대비할 수도 없다. 우리는 아무런 준비 없이 고난을 헤어나야 한다. 급류. 고난의 시기는 강이 급류가 되어 흐를 때와 같다. 급류는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다. 고난이 닥치면 우리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하지만 고난은 우리를 끝 간 데 없이 몰아붙인다. 우리는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물결이 잔잔해져야만 급류가 끝났다는 걸 알 수 있다.

고난에 빠졌을 때 우리는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한다. 누군가는 허우적거리다 급류에 떠내려갈 것이고, 누군가는 간신히 무어라도 붙잡고 목숨을 부지하겠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절망케 한다. 노력한다고 삶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난은 우리의 삶을 바꿔놓는다. 급류가 휩쓸고 간 자리가 예전 모습 그대로일 수 없듯, 고난을 겪고 난 뒤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고난은 너무 가혹해서 삶에 생채기를 낸다. 그리고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흔적을 남긴다.

불미스러운 사건은 ‘도담’과 ‘해솔’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도담의 아빠 ‘창석’과 해솔의 엄마 ‘미영’은 불륜의 관계를 맺었다. 도담과 해솔은 늦은 밤 계곡에서 창석과 미영이 오해를 살 만한 모습으로 있는 것을 목격했다. 누군가 자기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창석과 미영은 당황했고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았다. 결국 두 사람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들의 죽음은 온갖 억측과 추문을 낳았다. 창석과 미영의 불륜 현장을 잡겠다고 그들을 쫓아갔던 일, 부모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죄책감, 도담과 해솔 가족을 둘러싼 소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은 도담과 해솔의 삶을 짓눌렀다.
 

300x250

 
도담과 해솔의 삶은 파괴되었다. 도담은 자기 몸에 상처를 내었고 오랜 시간 술에 찌들어 살았다. 도담은 그날의 일과 최대한 멀어지려고 애썼다. 그리고 다시 그 사건을 마주하는 데 1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창석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던 해솔은 창석을 따라 소방관이 되었다. 해솔은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죽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사고 현장에 뛰어드는 해솔의 행동은 자기 파괴적이다. 도담과 해솔의 사이도 어그러지고 말았다. 그들은 가시 돋친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찔렀다.

만약. 그날 도담과 해솔이 창석과 미영의 뒤를 밟지 않았다면. 도담과 해솔은 일련의 사건을 피할 수 있었을까. 마음의 짐을 벗을 수 있었을까.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지 않았을까. 영화 <미스터 노바디>를 보면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다. 수많은 선택의 결과였던 도담과 해솔의 고난은 그때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다른 형태로 다시 찾아왔을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는 만약을 가정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날 도담과 해솔에게 일어난 일은 능력 밖의 일이었고, 불가피했고, 불가항력적이었다.

뜻밖의 일은 도담과 해솔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때 창석과 미영의 은밀한 관계를 눈치챘는데, 분노와 배신감이 끓어오르는데,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 말고 도담과 해솔이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도담과 해솔은 급류에 휩쓸려 너무 먼 곳까지 떠내려갔다. 이제 도담과 해솔은 지나간 일을 자책하는 걸 그만둬야 한다. 과거의 일로 말미암아 앞으로 닥쳐올 일에 미리부터 겁먹지 않아야 한다. 과거와 미래에 발목 잡혀 더는 현재를 허비해서도 안 된다. 도담과 해솔은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있을지 모를 미래에 목매지도 않으면서 진정으로 살아야 한다.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거센 물살을 헤엄치듯이.’ (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