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둠 뚫기
지은이 : 박선우
출판사 : 문학동네

<어둠 뚫기> 리뷰
<어둠 뚫기>의 화자 ‘나’는 혼자 살아도 될 거 같은데 엄마랑 같이 산다.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끔찍해서 그런 거 같지는 않다. 엄마와 데면데면히 지내는 걸 보면. 고물가, 고금리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 같지도 않다. 독립할 경우 매달 들어가는 고정비가 만만치 않아 자발적으로 캥거루족이 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화자는 그런 케이스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엄마가 연로해서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엄마는 생활력이 강해서 혼자서도 잘 살 것이다. 화자는 직장인이므로 은행 대출을 받으면 작은 전셋집이라도 하나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엄마와 한집에 산다. 아마도 그에게는 독립할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화자는 출판사 편집자이지만 소설가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중혁은 한 강연에서 소설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설가는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사람을, 사물을, 관계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데에서 새로운 상상력이 생겨나는 거지, 어떤 직관을 통해서 뭔가를 이루어내지는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는 건 애정이기도 하죠. 대상에게 애정이 없으면 오랫동안 들여다볼 수 없고, 끈기 있게 보지 않으면 그에 대한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으니까요’ #출처 : 채널예스
화자는 소설가이다. 소설가는 관찰자이다. 관찰자는 애정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봐야 한다. 화자는 몇 년 전쯤부터 불현듯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도무지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그동안 이해해 보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았다. 이는 소설가의 본분에 어긋나는 일이다. 화자의 형은 일찍이 독립했다. 형은 소설가가 아닐뿐더러 엄마를 사랑하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형이 엄마 곁을 떠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화자는 소설가가 아닌가.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봐야 한다. 화자에게 있어서 독립은 소설가의 책무를 저버리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한때 조건 없이 사랑했던 엄마를 화자는 왜 이해할 수 없게 되었을까. 그건 엄마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이었으리라. 엄마는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혼자서 아들 둘을 키워야 했으니 억척스럽게 될 수밖에 없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생때같은 자식이 있었기에 그러지 못했다. 화자는 엄마의 고단한 삶을 모른 채 자랐을 것이다. 대신 엄마가 준 상처는 마음속 깊이 사무쳤을 테지. 가령 성 지향성에 혼란을 겪는 어린 화자를 매몰차게 대했던 거라든지, 고단한 생활의 무게에 이따금 분을 참지 못하고 폭발하여 어린 형과 화자를 쥐 잡듯이 몰아세우곤(85쪽) 했던 것, 분명히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했는데도 그 말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 같은 것들 말이다.
마음속 상처는 화자의 삶에서 빛을 몰아내고 화자를 어둠 속에 밀어 넣었다. 그런데 화자의 삶에 어둠을 드리운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화자는 게이가 뭔지도 모를 나이일 때부터 본능적으로 남자에게 이끌렸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솔직히 얘기했을 때 되돌아온 엄마의 반응은 학대에 가까웠다. 그 후로 화자는 오랜 시간 성적 지향을 감추고 살았다.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은 자신을 스스로 가두었다. 그는 연애하면서도 아웃팅을 걱정해야 했다. 누군가를 계속해서 만났지만, 일회성 만남으로 끝났다. 성 충동을 해소하기 위한 만남이었으므로 애초에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엄마와 화자 사이에 있었던 일들, 화자가 만났던 남자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었다. 화자가 글로 쓰기 전까지는 없었던 일이나 마찬가지인 이야기, 화자만 입다물면 아무도 모를 이야기,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157쪽) 그는 수많은 남자를 만나며 미처 몰랐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그건 글쓰기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는 백지에 자신에 대해 한 줄씩 써내려가면서, 눈 위에 발자국을 꾹꾹 눌러 남기면서 그가 아닌 그를 향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는 그를 잃어버리면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150쪽) 그러므로 화자는 글을 써야만 했다. 짙게 깔린 어둠을 뚫고 엄마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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