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인 것 같다.

iambob 2026. 2. 7. 09:34

제목 : 선량한 차별주의자

지은이 : 김지혜

출판사 : 창비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 창비


<선량한 차별주의자> 리뷰

언젠가 친구가 나에게 지인과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친구의 지인은 공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당시 지인의 부서에 신입사원이 들어왔는데 한 명은 소위 서울의 명문 대학을, 다른 한 명은 지방대를 졸업했다고 한다. 지인이 일을 시켜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명문대 출신이 일을 잘하더라나.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이 지방대를 나온 사람보다 말귀를 잘 알아듣고 빠릿빠릿하게 일도 잘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평소 내 생각은 그와 달랐다. 똑똑한 사람이라고 모두 일머리가 좋은 건 아니니까. 그동안 나는 내가 편견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지방대생의 능력을 깎아내리고 있었으면서. 

실제로 대학의 '간판'은 개인의 능력도 만들고 기회도 만든다. 명문대 출신은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고정관념을 얻는다. 일종의 유리한 편견인데, 이것이 실제로 현실을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호의적으로 다가가고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명문대학의 학생은 그들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기회를 통해 성장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반면 지방대생은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얻는다. 명문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덜 우수하고, 덜 성실하고, 노력이 부족하며, 일을 잘 못할 것 같다'는 기대를 받는다. 사회이런 편견을 바탕으로 그들에게 상대적으로 활동의 기회를 덜 부여하고 같은 성과에 대해 저평가하면서 개인이 성장하고 발전하기 어렵게 만든다. (65쪽 ~ 66쪽) 


사람들은 집단에 소속감을 가지면서 그 집단을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때 그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흡수되고 이 고정관념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고정관념을 내면화하느냐에 따라 본인의 역량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는 것이다. (66쪽) 친구의 지인 말대로 명문대 출신 신입사원은 일을 잘하고 지방대 출신 신입사원은 일을 못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정체성이 업무 역량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여행 마지막 날. 숙소에서 체크아웃한 뒤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가기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우리 가족은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고 밥도 먹기로 했다. 우리 가족이 찾아간 카페는 시쳇말로 분위기가 힙했다. 으레 그렇듯 누나는 카페를 배경 삼아 자신과 조카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바빴다. 우리 가족은 늦여름의 열기를 피해 서둘러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고르고 골라 찾아간 그 카페는 하필이면 '노키즈존'이었다. 점원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조카가 소란을 피우는 아이 취급을 받은 거 같아 괜히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입장을 거부하는 카페의 행태는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로 보아야 한다. 물론 다른 손님의 이용에 방해가 될 만큼 소란을 피우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경위가 없는 건 아니다. 어떤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그 집단 모두에게 연대책임을 지우는 것은 불합리하다. 과연 아이의 입장을 거부하는 것만으로 진상 손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진상' 손님이 성인 남성이라면 어떨까. 카페는 '성인 남성 금지'라는 표지판을 내세울 수 있을까. 이런 '진상' 손님이 대기업 직원이라면 어떨까. '○ ○ 기업 금지'라며 모든 사원의 입장을 거부할까. 이런 상황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121쪽 ~ 123쪽)

나는 나를 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으며 어쩌면 나도 차별주의자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당장 명문대생과 지방대생에 대해 그릇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나. 나는 차별주의자인 동시에 차별받기도 한다. 초등학생 조카를 둔 죄(?)로 카페 출입을 거절당했으니. 나는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았지만,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고, 차별한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못 할 수 있으며, 도리어 차별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나처럼 착각에 빠진 사람의 주의를 환기한다.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신화일 뿐(10쪽)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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