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냥의 시간

iambob 2020. 5. 6. 17:09

제목    사냥의 시간
감독    윤성현
출연    이제훈(준석 役), 안재홍(장호 役), 최우식(기훈 役), 박정민(상수 役), 박해수(한 役)


STORY

돈 한 번 잘못 훔쳐서 개고생하는 이야기

 

 

△ <사냥의 시간> 포스터

 


OPINION

 

1

국가 경제가 무너졌고, 도시 곳곳에서 총성이 울려 퍼지는 흉흉한 세상. 수많은 사람이 도박을 하고 있고, CCTV가 사방팔방에 깔렸으며, 곳곳에 보안 요원이 떼로 몰려다니는 곳에 돈을 훔치러 간 4명의 친구가 있다. 그냥 쳐들어가면 위험하니까, CCTV가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지 미리 파악해 놓았고, 총도 여러 정 구해서 총 쏘기 연습을 했으며, 금고 위치도 알아 두었다. 드디어 D-DAY. 그들은 중무장하고 도박장으로 향한다. 굳게 닫혀 있는 도박장 출입문. 4명의 친구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문을 향해 총을 갈기고 도박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보통 무고한 사람들을 빨리 내보내고 보안 요원들과 한바탕 총격전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친구들은 위협적으로 천장에 총을 몇 발 쏠 뿐, 행동이 어딘가 허술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분고분 친구들의 말을 따른다. 세상이 무법천지로 변했는데, 도박장을 지키는 보안 요원들이 총기 소지를 하지 않는다는 게 좀 이상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도박장을 운영하는 조폭들은 공실이 많아 보였는데도 굳이 다른 건물에서 CCTV로 도박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이게 다 친구들의 시간을 벌어주려고 만든 무리한 설정처럼 보였다.

 

2

어쨌든 친구들은 돈을 훔치는 데 성공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 ‘상수’는 도박장 종업원이었다. 직장 돈을 훔치는 사고를 쳤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나는 게 상식인데―나는 그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상수’는 어찌 된 영문인지, 바로 도망가면 자신을 의심할 거라며, 다음 날 당당히 도박장에 출근한다. 그 장면을 보며, ‘네가 명줄을 재촉하는구나!’, 싶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상수’가 죽긴 죽지만, 도박장에서 죽지는 않는다. 사회에 나가면 여러 이유로 하나, 둘 친구들과 멀어진다.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친구들이 모두 떠나가고 결국 ‘준석’만 남게 되는 걸까. 그렇다 하더라도 ‘상수’ 캐릭터를 그런 식으로 소비하는 건 좀 억지스러웠다.

 

3

‘한’은 집요하게 ‘준석’ 일행을 뒤쫓는다. 한편, ‘한’은 ‘준석’과 친구들을 쫓는 과정에서 ‘준석’ 일행에게 총을―빌려준 건지, 판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대준 총포상을 죽였고, 이에 격분한 총포상의 형은 복수의 칼날을 갈며 ‘한’의 뒤를 밟는다. 여차여차 친구들을 모두 잃은 ‘준석’은 ‘한’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지만 역부족이다. ‘준석’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려는 찰나. 총포상의 형 패거리들이 ‘짜잔’하고 나타나 ‘한’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한다. ‘한’은 부두로 피신한다. 그는 컨테이너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추격을 피하지만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그는 비틀비틀 낭떠러지 쪽으로 걸어간다. 패거리들은 그에게 마구잡이로 총을 쏘아댄다. 수없이 총을 맞은 ‘한’은 바다로 떨어진다. ‘설마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무슨 8, 90년대 홍콩 누아르 영화도 아니고, ‘한’은 총을 그렇게 맞았는데도 죽지 않았다. 이 또한 ‘준석’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한 억지 설정처럼 보였다.

 

4

‘한’은 절대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에 비해 친구들은 오합지졸이다. 힘의 불균형 속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은 심장을 조일 듯한 긴장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마냥 서스펜스만 느끼고 싶어 할 것 같지 않다. 나는, 모든 것이 미숙했던 친구들이 점차 성장해서 서서히 힘의 균형을 맞추어 가는 과정을 기다렸다. 안타깝게도 그런 모습은 마지막에 조금 그려질 뿐, 이야기의 초점은 시종 이유와 목적을 알 수 없는 사냥에 맞춰져 있었다. 내가 이런 결말을 보려고 인내심을 갖고 2시간 넘게 소파에 앉아있었던 게 아닌데, 허탈했다. 후속편을 만들 게 아니라면, ‘준석’의 손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렇게 존재감 없는 역할에 굳이 박정민 · 최우식 배우를 캐스팅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한’은 처음 친구들을 쫓을 때, 여러 비리가 담겨 있는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찾아야 하는 당위성이 있었다. 그의 목적은 의외로 빨리 달성된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오로지 재미로 친구들을 쫓는다. 당위성이 사라진 캐릭터가 얼마만큼 영화를 괴이하게 만들 수 있는지, 이 영화를 통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건 그렇고 내 별점은.


RAT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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