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아니스트

iambob 2020. 5. 25. 01:36

△ <피아니스트> 포스터

 


제목    피아니스트
감독    미카엘 하네케
출연    이자벨 위페르(에리카 役), 브누아 마지멜(클레메 役)


STORY

피아노 교수의 이중생활


OPINION

 

1

어렸을 때는 나이 들면 저절로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나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나를 포함―나잇값 못 하는 사람이 많아서, 어른은 거저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으면―눈치가 보이거나, 혼자 살고 싶거나, 결혼해야 해서―경제적 · 정서적으로 독립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동물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걷고, 부모로부터 타이트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뒤, 독립한다. 그에 비해 인간은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돌이 지나 걷기 시작해서, 오랜 기간 생존에 필요한 지식이 아닌, 취업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뒤 취직을 하고, 돈을 어느 정도 모아서 대출을 받거나, 혹은 부모의 도움을 받아 독립한다. 인간은 독립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 좋든 싫든 부모와 함께 지낸다.

 

독립하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져야 한다. 나는 아직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아서, 뭐라 말할 처지는 못 되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에리카’는 피아노 교수다. 사람들이 그녀의 피아노 연주에 감탄하는 걸로 봐서, 꽤 실력 있는 교수인 거 같다. 교수다 보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건 당연하다. 근데 그녀의 사생활은 좀 구리다. 나이 먹어서도 여전히 엄마랑 한 침대에서 자고, 늙은 엄마한테 격하게 대들고, 성인용품점 비디오 감상실에서 앞 남자 손님이 뒤처리하고 간 휴지 냄새를 맡으며 성인 비디오를 감람 하고, 자동차 극장에서 카섹스를 하는 커플을 보면서 오줌을 누고, 마조히즘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질투에 눈이 멀어 제자에게 몹쓸 짓을 한다. 앞서 나열한 거 말고도 이해 못 할 짓을 많이 한다.

 

그녀의 엄마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딸에게 과도하게 집착한다. 딸이 늦게 귀가하는 꼴을 못 본다. 딸이 입고 다니는 옷 하나하나 간섭하고 제재한다. 딸의 제자들이 딸보다 실력이 뛰어나면 안 되니 적당히 가르치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딸이 그녀에게 폭력적으로 나와도 얼렁뚱땅 넘어간다. 딸이 이성을 만나는 걸 극도로 경계한다.

 

3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우리는 아빠보다 엄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월등히 많다. 그래서 대체로 엄마와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정서적으로 부모와 분리되는 시기가 찾아온다. 자식에게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왔을때, 엄마는 큰 상실감에 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서적 분리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풍선효과처럼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아들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아들이 결혼한 뒤에도 계속돼 고부갈등으로 이어지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는 한국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부모가 어렸을 때부터 아이의 주체성을 길러주지 않으면 커서 마마보이나 마마걸이 될 수도 있다.

 

‘에리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근원에는 엄마의 억압이 있는 거 같다. ‘에리카’의 엄마는 딸을 위한답시고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고 하는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역효과를 낳는다. 엄마를 향한 소심한 반항의 강도가 점점 강해져 폭력적이고 괴상한 성적 취향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에리카’는 엄마의 억압을 싫어하면서도 엄마에게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4

‘에리카’는 사랑에도 서툴다. ‘클레메’의 끊임없는 구애를 이상한 조건을 붙여가며 거부한다. ‘에리카’는 여러모로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다. 제자의 재능을 질투하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학생들에게 갑질을 일삼는다. 또 질투에 눈이 멀어 제자의 손을 못 쓰게 만들어 놓고도 죄책감 없이 태연하게 행동한다.

 

 

△ 영화 속 한 장면

 

 

<피아니스트>는 한 인간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중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길 바란다. 하지만 ‘에리카’는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서도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성숙하지 못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 빚어내는 촌극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씁쓸한 뒷맛을 안겨준다. 그건 그렇고 내 별점은.


RATING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있다  (0) 2020.07.05
아메리칸 사이코  (0) 2020.06.27
패터슨  (0) 2020.05.21
사냥의 시간  (0) 2020.05.06
레이디 맥베스  (0) 2020.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