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밤쉘 -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2019)
감독 : 제이 로치
출연 : 샤를리즈 테론, 니콜 키드먼, 마고 로비
STORY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
OPINION
①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그래도 어떤 경우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더뎌 답답한 마음이 든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사고는 왜 계속 일어나서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따로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측의 안전 불감증 때문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그동안 나 몰라라 했던 부모가 자식이 죽자 자식의 재산을 상속받겠다며 난데없이 나타나고, 못난 어른들 때문에 고통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닌 세상을 보며, 무인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고, AI가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며, 휴대전화로 못 할 게 없는 세상이 온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풍요롭고 살기 좋은 세상이지만, 속을 들춰보면 여전히 약자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여론이 들끓을 때마다 정부와 입법기관은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만, 비슷한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② 여성 인권 문제 역시 변화가 더딘 사회 문제 중 하나이다. 영화는 폭스뉴스 내 만연해 있는 성차별, 성폭력을 보여준다. 폭스뉴스의 여자 앵커들은 시청률에 혈안이 돼 있는 로저의 명령에 따라 다리가 훤히 드러나고 몸매가 부각되는 원피스를 입고 방송을 진행해야 한다. 남자 간부는 여직원 앞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저질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심지어 그런 농담은 불특정 다수가 보는 방송으로까지 이어진다. 여자 앵커가 프라임 시간대 방송을 따내기 위해 필요한 건 실력이 아니다. 로저의 여성을 향한 일그러진 욕망을 얼마나 잘 충족시켜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로저의 눈 밖에 나면 시청률이 낮은 시간대로 좌천되거나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나야 한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비단 미국만의 문제겠는가. 한국에서도 한 여자 검사의 내부고발로부터 촉발된 미투 운동이 사회 각계각층으로 확산한 바 있다. 그래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가 마냥 남의 나라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③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여성들의 성공 욕구와 남성들의 비뚤어진 욕망이 맞아떨어져 영화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애초에 여자를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경영자인 곳에서, 과연 여직원들이 제대로 된 처우를 받았을지 의문이다. 여자가 폭스뉴스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실력, 비전, 가치관, 열정 같은 게 아니다. 단지 남자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섹스어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이 그렇듯,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내부고발자로 찍히면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고, 자신의 커리어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도 있으며, 2차 피해의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득보다 실이 많음으로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책임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린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④ 영화와 같은 일이 일어나면 종종 사건의 본질은 흐려진 채, 남녀 성 대결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유사 사건을 방지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개인의 인권을 짓밟았는데, 남자 탓, 여자 탓할 겨를이 어디 있나. 애먼 곳에 싸움을 붙여 물타기를 하고, 자신은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는 건 권력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다. 예기치 않은 논란은 피해자를 경직 시켜 피해 사실을 숨기게끔 만든다. 피해 사실을 숨기기보다 용기 내어 드러내 준 사람들 덕분에 미투 운동이 확산하였고, 세상에 묻힐 뻔했던 사건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괜한 이념 논쟁을 벌이는 건 지양하고 미투 운동을 인권 문제로 접근해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거 같다. 영화 말미에 피해자들이 받은 피해보상금보다 가해자들이 챙긴 퇴직금이 더 많다는 자막을 보며 이 문제 또한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RAT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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