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중년의 사랑

iambob 2026. 4. 8. 14:16

제목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지은이 : 프랑수아즈 사강

출판사 : 민음사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 / 민음사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리뷰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주인공 ‘폴’은 39세이다. 이혼 경험이 있고, 혼자 살고 있으며, 남자 친구 ‘로제’와 사귀고 있다. 폴은 자기가 나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부쩍 늘어난 주름은 그녀가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넘어가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폴과 로제에게는 권태기가 찾아왔다. 의무적으로 만나고는 있었지만, 로제는 폴을 방치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폴은 로제와 헤어질 마음이 없다. 폴은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잇고 그 사람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가 겁났다. 그녀는 이제 인간관계를 형성하느라 애쓰는 일에 열정을 쏟고 싶지 않았다.

그런 폴의 인생에 한 남자가 불쑥 비집고 들어온다. 그 사람은 바로 ‘시몽’. 폴보다 14살 어렸고, 변호사였으며, 깜짝 놀랄 정도로 미남이었다. 시몽은 폴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는 폴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저 없이 호감을 표시한다. 폴은 시몽의 마음을 젊은이의 치기쯤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폴이 시몽을 밀어낼수록 시몽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은 꺼지지 않고 더 활활 타오른다. 


시몽의 구애는 폴을 난처하게 만들긴 했어도 로제와 사귀고 난 뒤, 망각하고 있던 것을 일깨워 주었다. 로제와 사귀고 나서부터 폴은 취향을 잊고 살았다. 그녀의 집중력은 오로지 로제에게 향해 있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폴은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57쪽)

그래도 폴은 시몽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폴과 로제는 함께한 세월이 있었다. 그동안 두 사람은 기쁨과 회의와 온정과 고통으로 뒤범벅된(64쪽) 시간을 보냈다. 근래 둘의 사이가 소원하게 되었다 해도 무를 자르듯이 쉽게 관계를 끊을 수 없었다. 세월은 폴과 로제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세월 덕분에 폴은 특별한 능력을 키우게 되었다. 폴은 몇 년 전부터 무시무시한 자기 방어 기제(74쪽)발달시켜 왔다. 폴은 억양의 변화만으로도 로제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로제는 주말마다 일로 바빴다.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 어땠냐는 폴의 질문에 로제는 말을 더듬었고 목소리를 점점 더 작게 내더니 마침내 말꼬리를 흐렸다. (74쪽) 로제는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한마디만으로도 폴은 로제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두 사람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관계는 로제가 바람을 피우면서 허물어지고 만다. 그리고 폴의 마음은 시몽에게로 기운다. 시몽은 사랑을 하면서 앞뒤를 재지 않는다. 그는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시몽에게 관심 있는 건 오로지 현재뿐(106쪽)이었다. 그래서 시몽의 관심과 열정은 현재 사랑하고 있는 폴에게 향해 있었다. 반면 폴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면서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사람들의 험담이나 앞으로 강조되어 드러날 시몽과의 나이차에 대한 두려움 이상으로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모욕감이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젊은 남자나 좋아한다며 요란스럽게 입방아를 찧어 대리라. 사람들의 경멸과 시샘(102쪽)은 불을 보듯 뻔했다. 

안타깝게도 폴은 시몽처럼 사랑할 수 없었다.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던 시기는 지났다. 이제 그녀는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시몽은 그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드레스와 같았다. 시몽의 외모는 너무 눈에 띄었다.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그녀의 삶은 지나치게 비상식적이었다. (131쪽) 그건 그녀가 바라던 삶의 모습이 아니었다.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를 만났더라면 한 살이라도 더 어려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데이트하고 난 후 녹초가 되는 일도 없을 테지. 폴은 본능적으로 새로 개척하는 대신 갖고 있는 것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직업을, 그리고 남자를······. (141쪽)


결국 폴은 다시 로제에게로 돌아간다. 모험 대신 익숙함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사랑의 모험을 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나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별 후 시몽은 아름다운 고통, 아름다운 슬픔, 격렬한 슬픔을 느낄 (150쪽) 것이다. 폴은 시몽이 부러웠다. 그녀는 앞으로 결코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폴은 로제와 사귀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을 것이다. 새로운 사랑을 하면 그 일을 또 겪어야 한다. 그녀는 그 과정을 반복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폴과 로제는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다. 헤어져 있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소중함을 확인했다. 그래서 로제는 예전과 좀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폴은 또다시 홀로 쓸쓸한 주말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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