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의 마법사] 권력을 향한 검은 야욕

iambob 2026. 5. 13. 11:54

제목 : 크렘린의 마법사

지은이 : 줄리아노 다 엠폴리

출판사 : 책세상


크렘린의 마법사 / 줄리아노 다 엠폴리 / 책세상


<크렘린의 마법사> 리뷰

‘바라노프’의 할아버지는 러시아 제국의 귀족이었다. 할아버지의 앞날에는 탄탄대로가 열려 있었지만,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면서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았다. 여러 공화국이 통합되었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탄생하였다. 할아버지에게 혁명은 재앙과 같았다. 눈앞에서 권력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공산주의자들을 혐오하였다. 할아버지는 새로운 정치 체제 안에서 아웃사이더처럼 살았다.

바라노프의 아버지는 ‘소비에트 대백과사전’에도 이름이 오를 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 바라노프는 당 사회과학아카데미 원장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특권을 누리며 살 수 있었다. 일반 시민들은 꿈도 못 꿀 값비싼 먹을거리를 보급품으로 받았고, 검열 때문에 상영이 금지된 영화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하면서 아버지 또한 권력에서 멀어졌다. 바라노프의 아버지는 일, 특권, 명예 등 반세기 동안 이루어온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었다. 

급변하는 세상은 바라노프 집안사람들을 권력 밖으로 밀어냈다. 바라노프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며 러시아에서 중요한 건 권력과의 근접성 즉, 특권(58쪽)이라는 걸 체득했을 것이다. 마침, 시대의 흐름이 바라노프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바야흐로 텔레비전이 새로운 세계의 신경중추(95쪽) 역할을 하던 때였다. 바라노프는 모스크바 연극예술 아카데미에 들어가 연극에 대해 배웠는데, 그때의 경험은 텔레비전 프로듀서로 경력을 전환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미디어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다. 방송사는 마음만 먹으면 자기 입맛에 맞게 대통령도 바꿀 수 있었다. 바라노프가 일했던 방송사의 소유주 ‘베레좁스키’가 텔레비전의 힘을 이용해 권력을 쥐려고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정당을 창당하고 대선 주자로 ‘푸틴’을 낙점한다. 그는 대통령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해서 러시아를 좌지우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푸틴을 너무 얕잡아 보았다. 푸틴은 가만히 앉아서 누구의 조종이나 받고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푸틴은 야심만만했고, 냉정했으며, 주도면밀하고, 무자비했다.

소련이 해체된 후 러시아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국가 재정은 부도 사태를 맞았다. 푸틴은 무너진 수직축의 복구를 바랐다. TV와 비자금의 도움을 받아 광고를 찍고 벽보를 만들고 집회를 여는(152쪽) 방식으로는 수직축을 바로 세울 수 없었다. 혼란에 휩싸인 나라를 구하려면 다른 방식의 선거운동이 필요했다. 푸틴은 바라노프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바라노프는 푸틴을 위한 맞춤형 전략으로 ‘NO-캠페인’ 선거운동(152쪽)을 전개했다. 바라노프는 뉴스에 푸틴이 테러단체와 맞서 싸우고 있는 병사들을 방문해서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걸 내보냈는데, 시청자들은 아주 강인하고 결연한 병사들의 표정을 보며 앞으로 자기들을 이끌 진정한 지도자가 누구인지 실감(149쪽)했다. 바라노프는 푸틴이 위대한 정치가라는 배역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조력했고, 푸틴은 자신이 의도한 대로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할아버지, 아버지와 달리 바라노프는 권력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그는 푸틴 곁에서 일하며 권력을 손에 쥔 자가 권력을 오로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걸 지켜보았다. 할아버지, 아버지와 차이점이 있다면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았다는 것. 바라노프는 친근함이 언젠가 화를 부를 거라는 걸 잘 알았다. 바라노프는 푸틴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그 비밀은 언젠가 바라노프의 발목을 잡을 게 분명했다. 푸틴은 비밀이 탄로 되는 걸 원치 않을 것이고 원인 제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픈 유혹(341쪽)에 휩싸일 것이다. 바라노프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알아서 먼저 사라지는 길을 택한다. 

베레좁스키는 잠자는 사자의 수염을 건드렸다. 잠에서 깨어난 이는 이제 권력을 영속하려는 검은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권력의 정점에 선 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까. 

“이제 인간적 협조가 필요 없는 권력을 상상해봅시다. 반항할 리 전혀 없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안전과 힘이 보장되는 경우 말입니다. 가령 전자 부대, 드론 부대, 로봇 부대는 언제라도 아무 망설임 없이 타격에 나설 수 있어요. 완벽한 형태의 권력이 구축되는 셈입니다. ··· 오로지 지시와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를 기반으로 한다면, 그 권력은 아무런 제약 없이 작동하게 되지요. 기계의 문제는 인간에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지시를 곧이곧대로 따른다는 데 있어요. (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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