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간의 본질
지은이 : 로저 스크루턴
출판사 : 21세기북스

<인간의 본질> 리뷰
다윈의 진화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모든 생명체는 약간씩 변이 한다.
② 이 변이는 후대로 물려 전해진다.
③ 생존을 위한 극심한 투쟁이 있으며, 생존에 유리한 변이가 일어나는지가 생명체의 생존을 결정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생명체가 진화를 겪을 때 유전자가 변이를 주도한다고 보았다. 그는 자기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생명체는 유전자 보존을 위해 프로그램된 기계와 같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모든 생명체는 생존 경쟁에서 승리한 유전자의 자기 복제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 행동에 대한 난해했던 문제들을 유전자의 관점에서 생물학적 비유로 풀어갔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전면 개정판(2015), 을유문화사, 5쪽) 이 책은 진화에 대해 새로운 이론적 패러다임을 제시하였기에 흥미로웠다. 나는 아무런 비판 없이 책을 읽었다.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가설에 빠져들었으며, 논증에 아무런 결함이 없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철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 가설에도 허점이 발견된다.
리처드 도킨스는 문화가 마치 바이러스가 세포의 에너지를 이용하듯 인간 두뇌의 에너지를 이용해 스스로를 복제한다는 ‘밈’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밈 역시 생활권이 필요하며, 그 생존의 성패는 같은 부류의 예시를 더욱 많이 생산해 내기에 안성맞춤인 생물학적 위치를 찾아내는 데 달려 있다. 그 위치란 바로 인간의 두뇌이다. (36쪽) 그런데 밈화된 정보들이 떼로 존재하며, 모종의 복제 과정을 통해 뇌에서 뇌로 전파된다 해도, 그것은 의식적 사고보다 앞서 머리로 들어올 수 없다. (39쪽)
개념은 비판적 사고의 의식적 네트워크를 이루는 일부분이다. 우리는 개념의 진실성, 타당성, 도덕적 적합성, 우아함, 완전성, 매력 등을 놓고 평가한다. 우리는 때로 진실과 설명을 찾는 여정 속에서, 때로는 의미와 가치를 찾는 과정에서 개념을 받아들이거나 폐기한다. 그 두 가지 활동 모두 우리에게는 필수적이다. 문화는 재생산에 성공해야만 사후적으로 명예를 인정받는(38쪽) 것이 아닌 비판적 정신의 의식적 활동이다. (39쪽~40쪽)
리처드 도킨스는 이타주의와 도덕적 사고도 유전자의 발현으로 보았다. 이타적이고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진화적으로 번성하기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유전적으로 협동심이 약하고, 자녀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희박하며, 자녀를 위해 희생하려 들지 않고, 성적 자제력이 없으며 폭력에 대한 통제가 약한 개체군은 재생산과 관련해 제 기능을 못하는 특질을 물려받은 개체군이 되고 결국 사라진다. 하지만 이런 지엽적인 진실로부터 우리는 도덕적 처신이나 도덕적 사고의 원인에 대해, 그리고 그 근원에 대해서 아무것도 추론해 낼 수 없다. (43쪽~44쪽) ⟪이기적 유전자⟫는 ‘이타주의’의 충분조건만을 제공할 뿐(45쪽), 유전자의 의도, 선택, 목표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43쪽)
과학은 인간 진화의 비밀을 밝혀내고 있다. 과학 덕분에 우리가 ‘나’라는 인간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과학만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과학은 어떻게 인간이 도덕적 판단을 하는지 기술적으로 분석할 뿐, 왜 그것이 옳은지 가치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인간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철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철학은 오랜 시간 인간에 대해 탐구해 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 본성과 도덕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간성이란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생명 활동과 행태 위에 덧붙여진 것이 아니고, 생물학적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성은 유기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인격적 관계에 따라 연관 지을 수 있을 때 창발한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관계는 “왜”라는 질문 앞에서 원인이 아니라, 이유와 의미를 찾는 새로운 방식의 설명을 이끌어 낸다. 인격을 지닌 우리는 대화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남들의 행동을 우리의 눈높이에서 납득하고자 하며, 우리도 남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이러한 대화의 중심에는 자유, 선택, 책임 등의 개념이 자리 잡고 있으며 동물의 행태를 묘사할 때에는 그런 개념이 아무 쓸모가 없다. (63쪽~64쪽)
우리는 ‘나’를 1인칭, ‘너’를 2인칭으로 호명한다. 동시에 나를 2인칭으로 호명하기도 하는데, 이건 상대가 스스로를 1인칭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13쪽) 1인칭 특권은 인격적 관계의 토대이다. 요컨대 너를 호명하는 나는, 너의 1인칭 자각을 나의 권역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네게 생각을 바꿀 만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고 너 역시 내 생각을 바꾸려 할 수 있다. 우리의 진솔한 1인칭 진술은 우리의 생각, 감정, 행위를 드러내는 유일한 권위의 원천인 만큼, 우리는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는 특별한 방식으로 서로와 마주한다. (114쪽~115쪽)
나-너 만남 속의 우리는 우리가 자각하고 있고 다른 이가 밝혀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이유를 두고 행동한다. 신뢰는 신뢰할 만한 답변 위에 쌓이며, 진실한 태도는 진실을 보장한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행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믿음, 생각, 느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서로에게 의탁하는 능력 덕분에 오직 인격체 사이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유형의 관계가 생겨난다.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에 대해 각자 책임을 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116쪽~117쪽)
인격적 관계는 호명하여 불러내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한 말과 행동으로 너에게 응답할 수 있고, 너 또한 내게 그러하다. 그로 인해 우리는 상대가 자율적 존재로서 자신의 성격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나의 자유는 인간적 사건으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맥락 없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회적 조건의 산물이며, 타자에 대한 책임의 온전한 부담과 함께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는 나의 그것과 마찬가지의 자율성이 담겨 있다는 인식과 함께 딸려오는 것이다. (173쪽)
도덕성이란 어떤 면에서 볼 때 우리가 서로 협상하며 살 수 있게 해주는 개념들을 제공하기에 존재한다.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은 우리의 행동에 이유가 있으며 이유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변인에게 불쾌감을 유발할 때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불편부당하고 보편적이며 규범으로 작동할 수 있기에 다른 이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원칙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 중 일부가 되는 것이다. (155쪽) 우리의 도덕적 원칙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는 이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미덕과 악덕에 더 관심이 큰 그런 이들과 얼굴을 맞댐으로써 도달하는 인격적 관계의 침전물이다. 죄책감, 존경, 비난 등을 포함한 그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그 뿌리라 할 수 있는 나-너 관계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담고 있다.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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