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을린 사랑> 리뷰

iambob 2020. 9. 29. 01:14

그을린 사랑(2010) / 드니 빌뇌브 감독 / 루브나 아자발(나왈 마르완 ), 멜리사 데소르모-풀린(잔느 마르완 ), 맥심 고데트(시몬 마르완 ) 출연


△ <그을린 사랑> 포스터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

 

OPINION

1

오이디푸스는 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한다. 무슨 막장 같은 이야기냐 하겠지만, 원래 그리스­로마 신화는 그러니까. 이 영화에는 어쩔 수 없이 엄마와 헤어진 아이가, 커서 엄마를 겁탈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또한 무슨 막장 같은 이야기냐 하겠지만,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전쟁은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도 철저히 파괴한다. 나왈은 가족이 반대하는 사랑을 했고 남자 친구는 오빠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녀는 남자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바로 보육원에 맡겨진다. 아이는 커서 고문 기술자 아부 타렉이 된다. 내전이 발발하고 나왈은 무슬림 테러 단체에 가담해서 기독교 민병대 지도자를 암살한다. 그녀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15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아부 타렉과 나왈은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고문 기술자와 죄수로 만난다. 아부 타렉은 나왈의 자존감을 짓밟기 위해 그녀를 성고문한다. 그녀는 아들의 아이를 임신을 하고, 쌍둥이 남매를 낳는다.

 

2

나왈은 쌍둥이 남매에게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뭐 엄청난 유산을 남겨 놓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남매로서는 다소 황당한 내용의 유언이다. 나왈은 유언을 통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었던 남매의 아버지와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았던 손위 형제를 찾아 편지를 전달하라는 미션을 남긴다. 남매는 유언장을 받아 든 그 자리에서 바로 편지를 뜯어볼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착하게 엄마의 미션을 수행한다. 그리고 엄마의 과거를 쫓는 과정에서 그들이 찾아 헤맸던 아버지가 그들의 오빠이자 형이기도 하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나왈은 자신의 존엄성을 훼손한 아부 타렉을 벌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왈의 전략은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둔다. 남매의 아버지이자 자기 아들에게 남긴 편지 내용을 보면, 그녀가 단지 복수만을 노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나왈은 아들에게, 고문 기술자가 되어 자신을 괴롭혔고 원치 않는 아이를 낳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나왈의 편지는 아부 타렉을 향한 통쾌한 복수이면서, 동시에 죄를 뉘우칠 기회를 제공한다. 아부 타렉은 불편한 진실을 마음속에 각인한 채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3

전쟁은 비극을 잉태한다. 나왈은 진영논리에 빠져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현실에 염증을 느낀다. 아부 타렉은 엄마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국내 사정은 그를 고문 기술자로 만들었고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도록 만든다.

 

전쟁 피해자는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을 뿐인 가해자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영화는 나왈에게 주어진 비극을 아부 타렉에게 비극으로 갚아준다.


RAT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