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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리뷰

iambob 2020. 10. 11. 00:58

용서받지 못한 자(2005) / 윤종빈 감독 / 하정우(유태정 ), 서장원(이승영 ), 윤종빈(허지훈 ) 출연


△ <용서받지 못한 자> 포스터


OPINION

1

군대는 참 이상한 곳이다. 말이 되든 안 되든 고참 말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튀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고, 계급이 낮은 사람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군대는 군기를 중요시한다. 그래서 하극상은 용납되지 않는다.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니 자신보다 상급자가 나이가 많으면 그에 따른 예의를 갖추면 된다. 그런데 이른 나이에 군대에 지원하는 경향으로 인해, 자대배치를 받아보면 동갑이거나 어린 고참이 많다. 같은 또래에게 극존칭을 써가며 계급에 따른 대우를 해줘야 하는 상황이 처음에는 어처구니없을 수 있다. 하지만 군대는 어떤 조직보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곳이니, 또래 고참이 어떤 꼴통 짓을 하더라도, 무조건 참고 견뎌야 한다.

 

낯선 환경, 경직된 조직 문화, 억압적인 분위기가 어우러지면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군 생활이 익숙지 않은 신참은 실수를 연발할 수밖에 없는데, 고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몇몇 고참은 신참이 실수하면 군기를 잡거나 교육을 한다는 핑계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급자는 일이 손에 익을 때까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럴 때마다 상급자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하급자를 도와주려는 건지 괴롭히려는 건지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악순환이 따로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많다. 군화는 왜 광을 내야 하는지, 계급이 낮은 병사는 왜 TV를 보면 안 되는지, 공중전화는 왜 계급이 높은 병사들만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지, 왜 속옷까지 각을 잡아서 관물대에 정리해 놓아야 하는지. 요즘 군대도 여전히 예전과 같은지 궁금할 뿐이다.

 

2

승영은 군대가 불합리한 곳처럼 보인다. 그리고 자신은 고참이 되어도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며, 후임을 갈구지도 않을 거라고 다짐한다. 군대 선임이자 중학교 동창 태정은 그런 승영이 걱정스럽다. 태정은 자신이 제대하고 나면 도와줄 사람도 없고 군 생활이 힘들어질 테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조직에 순응하라고 말한다. 태정이 그렇게 말할 때까지만 해도 승영은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군대는 승영의 마음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위계질서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군대에서 승영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결국, 승영은 고참들에게 찍혔고, 어리버리한 후임이 들어오면서 그의 군 생활은 꼬이기 시작한다.

 

태정이 제대를 하고, 이제 승영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군 생활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예전처럼 행동했다가 제대하는 그날까지 군 생활이 편치 않을 거라는 걸 직감한 승영은 서서히 선임들에게 아부도 떨고, 적당히 타협도 할 줄 아는 인물로 변해간다.

 

개인이 조직을 바꾼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부분의 사람은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이 불합리하다고 느껴도, 비록 뒤에서 욕할지언정 표면적으로는 그냥 그렇게 적응하며 산다. 처음 자대배치를 받으면 말년 병장 수동 같은 사람이 꼭 있다. 후임을 갈구는 병장을 보며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나중에 자신도 그때 그 병장과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병장 계급을 달기까지 받았던 핍박과 설움을 한 번에 털어내기라도 하듯이.

 

3

승영의 후임 지훈은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자살을 한다. 제 뜻대로 풀리지 않는 군 생활, 외부와의 단절, 고민을 나눌 사람의 부재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자살한 거 같다.

 

지훈이 죽기 전, 하필 승영은 지훈의 행동을 문제 삼으며 지훈을 심하게 갈군다. 승영은 지훈의 죽음이 자신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해 괴로워한다. 그리고 모든 일이 처음 다짐과 달리 자신이 변했기 때문에 일어난 거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승영은 태정을 만나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놓고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막상 승영은 태정을 만나서 두서없는 말만 늘어놓는다. 태정은 그런 승영을 보자, 군대에서 승영 때문에 굳이 안 겪어도 됐을 일들을 겪은 게 떠올라, 그에게 모진 말을 한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인데, 가끔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할 때가 있다. 승영은 태정과 지훈에게 뱉어놓은 말이 있었다. 자신이 고참이 되면 군대의 부조리한 관행을 바꿀 것이고, 좋은 고참이 될 거라고. 하지만 승영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그는 결국 조직에 순응하고 말았고, 지훈에게는 여느 고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훈의 죽음을 계기로 승영은 자신이 너무 많이 변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승영은 왜 속으로만 끙끙 앓고, 태정에게 속 시원히 말을 못 할까, 궁금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처음 자신만만했던 다짐과 달리, 많이 달라져 버린 현실이 그에게 자괴감을 불러일으켰고, 자신의 언행 불일치를 차마 태정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싶다.

 

4

다시 군대에 가고 싶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군대는 여전히 가고 싶은 곳이라기보다 가능하다면 안 가고 싶은 곳인 거 같다. 고위공직자의 자식, 운동선수, 연예인의 병역 비리가 심심찮게 발생하는 걸 보면 말이다.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자는 나라가 부르니까 어쩔 수 없이 간다는 마음으로 입대하는 걸지도 모른다.

 

태정 역시 군 생활이 그다지 탐탁하지 않았나 보다. 그는 휴가 나온 승영을 마지못해 만나준다. 그것도 여자 친구를 대동하고서. 승영이 제대한 뒤 부대 사람과 연락하느냐고 묻자 태정은 자신이 왜 그 사람들을 만나냐며 질색한다. 하기는 군대 생활이 돌이켜볼 만큼 아름다운 추억도 아닌데, 굳이 머릿속에서 끄집어내 기억해낼 필요가 있을까. 태정, 승영과의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급히 불러낸 여자 친구, 그리고 승영은 함께 술을 마신다. 그곳에서 태정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데, 군대에서 있었던 무용담을 쉼 없이 늘어놓는다. 마치 어두운 아우라를 풍기는 승영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는 애초에 꺼내놓지도 말라는 듯이.


RAT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