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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리뷰

iambob 2020. 10. 29. 21:19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2003) / 이재용 감독 / 배용준, 이미숙, 전도연 출연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포스터


STORY

카사노바 조원이 정절 높은 숙 부인을 유혹하는 이야기


OPINION

1

유교의 영향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사회에 사는 사람으로서, 조선이 얼마나 폐쇄적인 나라였을지 상상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특히 사랑에서는. 남녀가 유별했고, 열녀비 같은 걸 세워서 평생 독수공방하는 여자를 높이 평가했고, 집안끼리 약속한 거라면 상대방이 누군지 몰라도 혼사를 치러야 했고, (어느 나라이건 마찬가지였겠지만)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같은 건 꿈조차 꿀 수 없었다. 그때 그 시절의 사랑을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오히려 남녀를 옭매는 여러 제약은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돼서, 그들을 더 응원하게 되고, 그들의 사랑을 더 애틋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그동안 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고 하면, 권력다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다소 뻔한 내용이 많았던 거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재연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은 소재를 다룬다. 이 영화는 조선 최고의 바람둥이 조원(배용준)이 열녀 숙 부인(전도연)을 유혹하는 이야기이다. 유교적 가치관과는 거리가 먼, 누군가 뒤에서 수군거리며 할 법한 이야기의 시점이 조선이라는 것과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쓰는 수법이 지극히 현대적이라는 점은 의외성을 갖게 하고 재미를 유발한다.

 

2

조원이 숙 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벌이는 행동들은 이 영화의 재미 요소 중 하나다. 그러한 재미를 반감시키는 건 역시나 예측 가능한 스토리에 있지 않나, 싶다. 바람둥이가 참사람을 깨닫고 개과천선하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는 익히 봐와서 새로울 게 없다. 현대극에서 질리도록 봤던 걸 굳이 영화에서 또 볼 필요가 있을까.

 

숙 부인 처남의 공격을 받고 생사기로에 선 조원은 좀 생뚱맞은 행동을 한다. 등에 칼이 꽂혔으면 빨리 의원에 가면 될 터인데(조원이 쓰러져 있는 걸 자근노비가 봤으므로), 어찌 된 영문인지 그는 죽음을 택한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조씨 부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직감해서 그런 결정을 한 거 같다. 그래도 조원의 목숨이 위태로워진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는 마치 비극적인 결말을 노리고 만든 설정처럼 보였다. 조원이 죽은 걸 알고, 결국 숙 부인도 살얼음이 언 강물로 걸어 들어가 생을 마감한다.

 

3

조씨 부인은 이 영화의 빌런이다.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다는 못된 심보를 가진 인물이다. 사촌지간임에도 조원은 조씨 부인을 짝사랑한다. 조원과 조씨 부인은 위험한 내기를 한다. 조씨 부인은, 조원이 조선에서 절개 높기로 유명한 숙 부인을 유혹하는 데 성공하면, 자신의 몸을 탐하는 걸 허락하겠노라고 약조한다. 조씨 부인이 그런 내기를 한 데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묻어 있었을 것이다. 조원이 오랜 시간 자신을 연모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의 결말이 늘 그렇듯, 조원은 숙 부인의 지고지순한 사랑 앞에 마음이 흔들리고, 그는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조원이 변절한 걸 알게 된 조씨 부인은 숙 부인이 천주교 신자라는 걸 이용해 못된 계략을 꾸민다.

 

4

△ 이병우 - 조원의 아침

 

이 영화의 메인 테마곡을 들어보면 고상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고상과는 거리가 멀다. 조원은 자신의 경험을 그림으로 남기는데, 그림체는 기품이 느껴지지만 내용은 난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조원은 비록 죽지만 그의 그림은 조선 사회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극 초반 유쾌한 분위기와 달리 결말이 무겁고 어둡다.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이 이 영화에 어떤 이점을 남기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결말이 비극으로 정해져 있었던 거라면, 비극으로 가는 과정이 더욱 자연스러워야 하지 않았을까.


RAT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