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새> 리뷰

iambob 2020. 8. 14. 11:39

제목    벌새
감독    김보라
출연    박지후(은희 役), 김새벽(영지 役)


△ <벌새> 포스터


STORY

1994년, 은희가 겪는 일들


OPINION

 

1

그랬다. 1990년대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회였다. 남아선호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고, 가정 내 폭력이 폭력인 줄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아빠는 권력의 정점에서 모든 가족 위에 군림한다. 강남에 있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낙방해서 강북의 학교에 다니고 있는 첫째 딸 수희는 (직접적인 손찌검은 없지만) 아빠의 공격 대상 1호다.

아버지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집안의 장남, 둘째 오빠 대훈은 티 안 나는 곳을 골라 남모르게 은희를 때린다. 식사 시간, 은희는 오빠에게 맞았다고 부모님께 말하지만, 엄마, 아빠는 남매간의 가벼운 싸움 정도로 넘겨버린다.

자녀 교육 문제로 엄마, 아빠가 크게 싸운 날. 엄마가 던진 스탠드 전구가 깨지면서 아빠는 팔을 다친다.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나란히 앉아 TV를 보며 웃고 있는 부모님을 은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2

1994년 그해에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난 해였다. 북한의 김일성이 죽었고, 서울의 성수대교가 붕괴하였다.

그 당시 뉴스에 나오는 북한 사람들의 몰골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김일성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그가 사라지고 나면 북한 주민들 모두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성이라도 지를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TV 속 북한 사람들은 마치 부모가 죽기라도 한 듯, 목 놓아 울었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속으로 위에서 시키니까 억지로 우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북한이 망하고 통일이라도 될 것처럼 세상이 들썩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큰 사고가 일어나면 운 좋게 목숨을 건진 사람과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성수대교를 지나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던 은희의 언니는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은희가 따르던 한문학원 선생님 영지는 하필 그 시간 성수대교를 지나고 있었고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다. 어이없는 일로 불행과 행운을 동시에 겪은 은희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져버린다.

3

누구나 사랑받길 원한다. 은희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다. 하지만 사랑받는 게 좀처럼 쉽지가 않다. 방앗간 일로 바쁜 엄마, 아빠는 은희에게 관심이 없다. 그나마 수술 정도는 받아야 부모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남자 친구 지완은 이런저런 핑계로 은희를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학교 후배는 무슨 시한부 사랑도 아니고 2학기가 되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버린다.

 

△ <벌새>, 영화 속 한 장면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 없는 은희에게 힘이 되어준 건 한문 학원 선생님이다. 영지는 은희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앞으로 은희 인생의 밑거름이 되어줄 주옥같은 말을 해준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혼자서는 도저히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때, 누군가 내밀어준 도움의 손길은 큰 힘이 된다.

4

1994년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다음 해, 또 그다음 해에도 사건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세상이 망할 거라는 사람들의 기우와 달리 세상은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다. 세상 걱정은 잠시 접어두자. 이 땅의 평범한 ‘은희’들 역시 속 시끄러운 일을 겪으며 살아간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지만, 나름 치열하게 고민한다. 돌이켜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 그때는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시답잖은 걱정으로 머리 싸매고 밤잠을 설쳤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희는 점점 단단해질 것이고, 누군가 만나고 헤어질 것이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내 별점은.


RATING

★★★☆


COMMENT

그렇게 은희는 점점 단단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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