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 프럼 어스] 구석기 시대에서 온 그대

iambob 2022. 10. 11.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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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맨 프럼 어스 (2007)
감독 : 리처드 쉥크만
출연 : 데이빗 리 스미스(존 역), 존 빌링슬리(해리 역), 토니 토드(댄 역), 윌리엄 캣(아트 역), 엘렌 크로포드(에디스 역), 리차드 리엘(윌 역), 알렉시스 소프(린다 역), 애니카 패터슨(샌디 역)



내 멋대로 쓴 <맨 프럼 어스> 리뷰

사연 있는 눈빛을 발사하며 속내를 감추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는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는 건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하지 않았던가. 캐묻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일 있어? ···아무 일 없는데. 아무 일도 없는데, 왜 그러고 있어? ······. 말해봐, 무슨 일인데? 실은··· 말속에 여지를 남겨 두면 궁금증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상대가 떡밥을 던지면 나같이 궁금한 걸 못 참는 사람은 그걸 덥석 물 수밖에 없다. 사연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늘 흥미를 유발한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서서히 빠져든다.

<맨 프럼 어스>에서 떡밥을 던지는 인물은 ‘존’이다. 그는 대학교 교수인데, 별안간 학교를 그만둔다. 동료 교수들은 그 소식을 듣고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존의 집에 모인다. 사람들은 그가 학교를 관두려고 하는 이유를 궁금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어디론가 떠나는 거니까. 존은 뜸을 들인다. 뭔가 속내가 있어 보이는데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는다. 이쯤 되면 존의 속마음이 궁금한 건 직장 동료만이 아니다. 나도 알고 싶다. 당신,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야!!

마침내 털어놓은 존의 비밀은 가히 놀랍기 그지없다. 그의 나이가 14,000살이 넘는다나 어떻다나. 존의 허무맹랑한 소리에 보통 사람이라면, 어디서 뻥을 치냐, 고 면박해주었겠지만, 존의 집에 모인 사람들이 누구인가. 명색이 대학교 교수가 아닌가. 면면이 생물학 교수, 인류학 교수, 고고학 교수, 미술학 교수, 정신과 의사인 그들은 전문 지식을 동원해 존이 주장하는 내용의 허점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하지만 (존의 말이 사실이라면) 존은 엄청나게 오래 산, 지식이 풍부한 역사학 교수라서 그런지 동료들의 촌철살인과 같은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한다.

빠듯한 제작비 때문이었을까. 영화는 존이 과거 일을 회상한다고 해서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의 대부분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채워져 있다. 상상은 관객의 몫이다. 내 머릿속에서는 지구에 문명이 꽃피우고 존이 역사적 순간을 함께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과장이 심한가. 아무튼 나는 제작진이 문답 형식의 가성비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특수효과 하나 쓰지 않고도 SF 영화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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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부터 현대사까지 존이 살아온 행적을 쭉 훑을 생각인가, 싶을 때쯤 이야기는 급반전한다. 불로불사인 한 남자의 장구한 인생을 그리던 이 영화는 갑자기 종교라는 민감한 주제를 건드린다. 놀랍게도 존이 예수였던 것. 사람들이 설마 하고 물어본 말에 존이 진지하게 답하면서 그들은 대혼란에 빠진다. 자신을 예수라 칭하는 사람의 말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나라면 구라 치지 말라고 말할 거 같은데···. 존은 자기가 어떻게 예수가 되었는지 소상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존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다. 존의 말에 따르면, 기독교는 불교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티베트와 인도에서 통각 차단 기술과 신진대사를 저하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추종자들을 존을 십자가에 내려 어느 동굴에 두었다. 존은 몸을 회복시켜 몰래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그만 열성 추종자들에게 들키고 만다.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했지만, 극도로 흥분한 추종자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존은 부활한 남자가 되었다. 이후 존의 이름은 발음이 조금씩 변형되는 과정을 거쳐 예수가 되었다.

존의 발언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기독교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가 기독교인의 심기를 얼마나 불편하게 할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지금의 기독교가 처음의 의도와 달리 많이 변질하였다는 존의 말은 새겨들어야 할 부분인 거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의 믿음을 악용해 사리사욕 채우기에 바쁜 종교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스스로 메시아임을 자처하며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는 몇몇 종교인은 개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를 일으킨다. 예수가 그런 걸 바라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게다가 존의 진의는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존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점점 지쳐간다. 그리고 상황은 극으로 치닫는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맞이했을 때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도 그랬던 거 같다. 존이, 지금까지 했던 모든 말들이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안도한다. 언젠가 어떤 교회 앞을 지나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라고 적힌 현수막을 본 적이 있다. 신이 정말 있다면 존처럼 정체를 숨긴 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거 같다. 신은 영원불멸의 존재이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테니까, 이 영화처럼 그 형상이 꼭 영적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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